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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국가` 구야국 그리고 김해 ⑨
`오래된 미래 국가` 구야국 그리고 김해 ⑨
  • 허영호
  • 승인 2021.08.2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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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호 김해문화원 부원장
허영호 김해문화원 부원장

또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이전에 비해 분화되고 복잡해진 사회를 포괄하는 한 차원 높은 규범과 율령의 반포로, 지배이념의 변화는 보편종교로서의 불교 수용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제 막 토착 주민들에게 지배자의 신성함을 강조함으로써 국가의 기틀을 닦기 시작한 수로왕대에는 고등 종교를 받아들일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가야불교와 파사석탑 논문 중에서 / 조원영) 이에 대해 허명철 박사는 앞선 책에서 <가야불교(伽耶佛敎)에 힘입어 일본으로 건너가 북구주(北九州)에 나라를 세웠다는 학설을 밝혀 가야의 우수성을 민족의 자부심으로 심어 주었으면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가야라는 국명 자체가 드라비다어로 인도에서 들어온 단어이며 그 뜻은 `다산`, `풍요`, `번영`을 상징하는 물고기 즉 신어(神魚)다. 그렇다면 지금 김해의 곳곳을 수놓고 있는 신어(神魚)문양도 초기불교와 함께 황옥이 해양을 통해 가야에 도래함으로써 직수입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살펴본 파사석탑도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불탑으로 황옥이 가야에 올 당시 이미 가야에 불교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볼 여지도 있다. 또 황옥이 별포나루에 배를 대고 산에 올라 비단 바지를 벗어 산신령에게 예물로 올렸다. 이런 페백 행위는 인도에서도 신부가 처녀의 순결성을 입증하기 위해 속옷을 바치는 풍습으로 남아 있다.

종교가 들어왔다는 의미는 두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실제 그 종교가 유입된 날을 시점으로 해석하는 것의 둘째 그 종교를 국가가 공인한 시점이다. 간다라 승려 마라난타의 백제 땅 도착과 신라 이차돈의 순교는 불교의 공인을 뜻한 것이지 그때 불교가 들어온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전에 불교는 이미 두 나라에 들어와 있었다. 마찬가지로 가야의 불교 공인은 5세기 무렵이지만 그 유입 시기는 황옥의 도래와 함께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면 <역사적 타협>으로 해석될까? 가야불교의 특징 중의 하나는 신국사, 진국사, 흥국사 등 사찰 이름에 국(國)자가 들어가는 것이 흥미롭다. 이는 국가불교적 이념을 종교에 투영시킨 것으로 절대자의 권위와 권력 유지에 국태민안의 명분으로 종교가 정치에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지난 5공 시절 종교지도자들이 `조찬기도회` 명목으로 청와대에서 머리를 조아린 대가로 대형교회를 선사 받고, `호국불교` 명목으로 축첩과 도박의 비행을 사면받은 것과 비교하면 지나친 억설일까.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종교를 통해 손상된 권위를 땜질하고, 종교는 정치를 통해 윤리적 타락의 치부를 가리는 상호보완재다.

최근 가야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이 높아지자 가야에 대한 담론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역사유적발굴, 가야사 복원사업, 전통문화계승, 가야문화 마케팅 등 다양한 메뉴들이 등장한다. 이런 메뉴를 갖춘 가장 고급 식당이 대학이고 이런 식당들의 또 다른 이름은 연구소 학회 등으로 불리며 그들의 주 요리법은 세미나 심포지엄 학술발표회 등이 있다.

조상묘를 판 것도 아니고 조상 덕에 밥술 좀 뜨겠다는데 조상인들 뭐라 하겠냐마는 가야사는 아직은 진국이 나올만한 덜 우려낸 사학계의 불루오션으로 남아 있어 신장개업을 하는 식당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역사는 바다라 실개천을 거부해서도 안되지만 시류의 조바심에 부응하여 `우려먹음질`의 남용도 경계하여야 한다.

"한국 지식 사회는…그저 다름없이 `신상` 수입 지식품을 쫓아다닐 뿐이다. 유시민, 진중권, 김어준 같은 선정주의를 파는 정치 소매상들이 사회 담론을 과잉점유한 풍경..."이라는 어느 신문의 칼럼이 비단 정치 소매상들에게만 해당 될까? 사학계에도 가야라는 <중고 신상>을 깊은 호흡 없이 막무가내로 걸쳐보는 보따리상들이 언뜻언뜻 눈에 띈다. 이는 무지와 시류를 넘어 학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역사는 "미래와의 대화를 위해 과거의 탄광을 묵묵히 캐내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개척해야 할 그 무엇이다. 이천 년 전 철의 제국 가야를 향한 황옥의 물길은 깊고 험했다. 오늘 `오래된 미래` 가야를 향한 역사의 물길 역시 망망대해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어코 가야를 가야 한다. 그 옛날 오래전 16세 소녀 황옥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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