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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군대
당나라 군대
  • 허성원
  • 승인 2021.08.1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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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의 여 시 아 해(如是我解)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 단체 팀의 경기가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감독의 용병 전략도 그렇고 선수들의 투지나 태도도 비난받을 여지가 있었다. 그들을 보고 누군가가 `당나라 군대`라 한다.

우리는 기강이 약하거나 사기가 떨어진 조직, 혹은 매번 싸울 때마다 지는 군대나 스포츠 팀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 그렇게 부르곤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그 역사가 짧지 않은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년 2월 1일의 기록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정조가 경연(經筵) 중에 경연관들에게, 당나라에 뛰어난 장수들이 있었음에도 싸울 때마다 번번이 패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해, 시독관 이재학은 왕의 질투와 의심을, 검토관 이유경은 소인이 중간에서 부린 농간을 각각 그 이유로 꼽았다. 이에 정조는 다음과 같이 그의 생각을 말한다.

"임금이 사람을 쓸 때에는 반드시 먼저 신중히 가려야 하고, 이미 임용하였다면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장수를 내보낸 뒤에 군대를 감시하고 그 동정을 엿보게 하였다. 그것이 첫 번째 폐단이다.

성 밖의 일은 장군이 주관하게 하여야 통솔체계가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정을 경유하게 하여 완급에 제때 대처하지 못해 기세를 잃었다. 그것이 두 번째 폐단이다. 아홉 절도사로 하여금 한꺼번에 출병하게 하여 서로 생각이 달라 명령이 여러 곳에서 나오게 되니, 이것이 세 번째 폐단이다. 이러한데도 어찌 성과를 따질 수 있겠는가?" 당나라는 현종 당시 일어난 안록산의 난과 사사명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당나라 군대는 반란군에게 번번이 패퇴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당나라가 전쟁에서 힘을 쓰지 못했던 원인을 정조는 세 가지 점으로 통찰한 것이다. 임금이 장수를 믿지 않은 점, 임금이 장수에게 확실히 권한을 위임을 하지 않은 점, 지휘체계가 일원화되지 않은 점 등이다. 이러한 정조의 지적은 조직을 이끄는 현대의 리더들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이 된다.

먼저, 인재에 대한 믿음이다. 정조의 말처럼, 애초 신중히 가려서 뽑아야 하고(必先愼簡), 이미 채용하여 일을 맡겼다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任之勿疑). 송사(宋史) 통속편(通俗編) 등 여러 고전에서도 `의심스러우면 쓰지 말고, 쓰면 의심하지 말라`(疑勿用 用勿疑)고 가르친다. 손자병법은 `상하의 추구하는 바가 일치하면 이긴다`(上下同欲者勝)고 하였다. 군주가 장수를 의심하면 상하의 뜻이 이미 어긋난 상황이다. 그렇게 믿음이 잃은 장수가 어찌 목숨을 걸고 전쟁에 임하겠는가.

그리고 권한 위임이다. 전투 현장의 장수는 군사작전에 관해 전권을 가지고 전략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상황의 변동에 적응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의 간섭이 없으면 이긴다`(將能而君不御者勝_손자병법)고 하였다. 그래서 장수는 상황에 따라서는 군주의 명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君命有所不受). 군주가 전쟁 중의 장수를 신임하지 못하여 그 지휘나 전략 운영에 간섭하고 그에 의해 군대를 혼란과 불신에 빠지게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어지럽혀 적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짓`(亂軍引勝)이 된다.

끝으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는 강한 조직의 생명이다. 명령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마치 하나의 몸통에 둘 이상의 머리가 달린 것과 같다. "회라는 벌레가 있다. 몸은 하나인데 입이 둘이다. 먹이를 다투다 서로 물어뜯어 마침내 서로 죽이고 만다(_한비자)." 머리가 둘이면 어느 입이 먹든 결국 한 뱃속으로 들어갈 것인데도 눈앞의 먹이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 고사는 한 조직 내에서 자신의 공명이나 이익을 탐하여 다투다 끝내 스스로와 조직을 곤경에 빠트리는 어리석음을 경계할 때 비유된다. 그리고 장자 달생(達生)편에는 `방황`(彷徨)이라는 `들판의 귀신`이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뱀의 형상을 하고 머리가 둘이며 몸통의 무늬가 오색찬란하다고 한다. 머리가 둘이라 제각기 자신의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터이니, 제대로 바르게 나아갈 수 없다. 부득이 들판을 방황하게 된다. 그래서 `방황`(彷徨)은 `목표를 잃고 갈팡질팡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결국 `당나라 군대`는 의심, 불신임, 방황의 지배를 받는 조직을 이른다. 이 같은 `당나라 군대`를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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