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0:13 (수)
우리 시대 정의는 있기는 하나
우리 시대 정의는 있기는 하나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21.08.04 2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는 어느 굽이에서 샛강으로 흐르는가. 샛강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다시 본류에 합쳐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교훈은 굽이마다 다르다. 실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진실에 의문을 달 때가 많다. 그렇다고 곤곤한 역사의 외침을 누가 다 가려낼 수 있겠는가. 시대를 달구는 잡다한 소리도 결국은 진실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묻히게 되기를 바라는 게 역사의 진실을 믿는 사람들의 소망이다. 주류의 역사가 진실이라는 배경을 깔고 오늘을 사는 게 우리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바른 역사가 뿌리내리기 전에 겪는 엄청난 혼란 속에 있다. `사회 정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그렇다`고 쉽게 답하지 못한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유죄 판결이 확정돼 구속이 됐다.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조작을 벌인 혐의를 인정한다면(사법부에서 그렇게 판단을 했으니), 파급 효과는 산을 덮어도 남아야 한다. 드루킹 사건의 유죄 판결은 저 멀리 놔두고 진실은 여전히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김 지사의 형은 확정됐지만 김 지사의 범죄 혐의는 숨어버리고 논리만 남아서 대립을 보이고 있다. 사법부가 불신받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내린 선고에 토를 달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법부의 선고를 두고 개인 의견을 내는 데에만 한정해야 한다. 김 전 지사 구속을 두고 진보와 보수가 입장을 달리할 수 있다. 자기 쪽 주장을 내세우는 건 자유지만 행여 힘을 모아 진실을 덮으려 하거나 선고의 결과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행위는 통탄할 일이다.

개인은 도덕적인 사람이라 해도 사회 안에서 한 집단에 속하면 집단 이기주의로 변할 개연성이 높다. 개인은 죽고 단체를 살리기 위해 개인이 손을 잡아 집단을 만들면 도덕성을 잃는다. 라인홀드 니버가 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들춰보면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민족적ㆍ계층적 충동이나 집단적 이기심을 생생히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니버의 예리한 통찰력이 지금 우리 사회에 그대로 먹히고 있다. 개인이 집단이라는 괴물에 속해 자기 목소리를 죽이고 단체에 조종당하는 모양새다. 옳고 그름은 없고 진영 논리만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목소리를 상대보다 높여 현재의 역사를 샛길로 몰고 가려는 사람은 역사의 죄인이다. 역사는 역사 자체가 진리를 낳게 하지만 현 역사가 나중에 제대로 쓰일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언론학에서 자주 다루는 `어젠다 설정 이론`은 자칫 사실을 왜곡하는 수단이 된다. 한쪽으로 너무 기운 언론이 어젠다를 의도적으로 내세우면 대중은 그 어젠다에 현혹돼 사실이 아닌 걸 사실로 받아들인다. 지금 진보ㆍ보수가 목소리를 내뿜는 건 대중의 마음을 뺏기 위한 작태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양심을 무뎌지게 하고 집단의 광기를 덧씌우는 비도덕적 사회가 한창 힘을 받고 있다. 참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사법부의 생명인 정의가 쓰레기통에서 뒹구는 현실에서 드루킹 혐의자의 수감을 두고 정의보다는 집단의 비도덕성에서 답을 찾으려는 진보와 보수는 차분히 역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긴 역사가 던져준 교훈에서 `승자 독식`보다는 `정의 우선`에 애써 무게를 실고 시대를 읽어 내리려는 숭고한 정신이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대통령 선거 운동이 서서히 불을 내면서 정의보다 `한 방`으로 기세를 잡으려는 경망스러운 행동이 벌써 눈에 너무 자주 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