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1:38 (금)
전문직과 귀게스의 반지
전문직과 귀게스의 반지
  • 허성원
  • 승인 2021.08.03 23: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 시 아 해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영화 `패신저스`는 동면 상태의 승객들을 태우고 120년간 항해하여 다른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에서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짐은 시스템 오류로 90년이나 일찍 동면에서 깨어난다. 대화상대로는 로봇 바텐더밖에 없이 지내다 동면 중인 오로라를 발견하고, 갈등 끝에 그녀를 깨우고 만다. 오로라는 짐과 연인이 되지만, 결국 그가 자신을 깨웠음을 알게 되어 분노하고 좌절한다. 그리고 갈등, 위기, 감동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 영화는 자신의 행위를 상대가 알지 못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전능적 권능을 가진 자가 타인의 인생에 임의로 개입한 경우의 윤리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의 최근 뉴스가 있었다. 한 영국 의사가 마취 중인 환자의 간에 아르곤 빔으로 자기 이름 첫 글자들을 새겼다. 수술 긴장을 풀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동료에게 발각되어 재판에 넘겨지고 벌금 및 5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영국 의사협회가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더 엄한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옛날 리디아의 목동 귀게스가 양을 돌보던 중 천둥 번개가 치고 땅이 갈라졌습니다. 땅의 틈으로 들어가 보니 문이 달린 청동 말과 그 안에 시신이 있었지요. 시신은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나와 끼고 돌려보니 사람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반지를 이용하여 왕궁으로 몰래 들어가 왕비를 겁탈하고 왕마저 죽이고는 왕이 되었습니다."이 `귀게스의 반지`는 플라톤의 `국가` 중에서 글라우콘이 소크라테스에게 들려준 예화이다. 글라우콘은 누구나 남다른 힘이나 권력을 가지면,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탐욕과 이기심을 이기지 못해 정의를 지키기 어렵다고 한다. 안전하게 부정을 행할 수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어 결코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반지`와 같은 특별한 권능에 기초한 완벽하게 나쁜 사람의 유형으로서 의사나 선장과 같은 전문가를 상정하며 말한다. "그들은 항상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즉시 바로 잡으며, 아무리 부정을 저질러도 들키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잘 속여서 근거를 남기거나 꼬리도 잡히지 않으며, 착하지 않으면서 착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아주 나쁜 짓을 해도 잘 막아내어 항상 평판이 좋습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러니 현명한 삶이란 선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선량하게 보이도록 행세하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들은 매우 순탄하게 살며, 선량하게 보이는 모습으로 국가를 다스리기도 하고, 좋은 여자와 결혼도 합니다. 불의를 즐겨 온갖 사리사욕을 취하며, 재산이 많으니 선심을 베풀어 친구를 많이 만들고, 신들에게 재물을 넉넉히 바치고 찬양할 수 있으니 선량한 사람들보다 신에게 훨씬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글라우콘은 정치 권력자를 상정하여 말하였지만, 대표적인 나쁜 사람으로 의사나 선장과 같은 전문가를 예시하였다. 그 전문가들은 현대의 의사, 변호사, 변리사 등 전문직과 실질적으로 일치한다. 전문직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과 능력으로 무장하여 사실상 각자 나름의 `귀게스의 반지`를 가진 셈이다. 그런 `귀게스의 반지`의 효력을 사리사욕을 위해 쓰면서 사람들의 업과 삶을 해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전문직들에게는 다른 직업에 비해 훨씬 엄격한 직업윤리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항상 글라우콘의 우려를 증명하는 일탈된 전문직들이 적잖이 존재하여 왔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어떤 기술이나 통치도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위한 것이오. 의술은 치료의 대상인 환자에게, 통치는 통치의 대상인 국민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통치자 등의 강자라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통치나 기술을 제공받는 상대의 이익을 도모하여야 하오." 그리고 `귀게스의 반지`와 같은 절대 권능을 남용하게 되면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파멸하고 말며, 그 권능을 이성적으로 절제하도록 자신을 통제하여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전문직들이여, 그대들의 지식과 능력은 그대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일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그대들의 운명은 그들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이타적으로 살아야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애초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