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6:20 (수)
의인물용 용인물의
의인물용 용인물의
  • 이광수
  • 승인 2021.08.0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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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송사(宋史) <금사 희종기>에서 사필은 `의인물사 사인물의`(疑人勿使 使人勿疑)라고 했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말은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와 같은 말이다. 우리나라 IT산업의 개척자 고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전 회장이 인재발탁의 원칙으로 삼은 용인술이다. 공사조직에서 능력 있는 인재를 발굴해 이용하기만 하고 조직필요에 따라 토사구팽(兎死狗烹)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생사여탈권을 쥔 최고위직에 밉보이면 소외당하기 쉽다. 조직에서 `의인물용 용인물의`를 제대로 실천하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표리부동한 리더도 적지 않음을 경험하게 된다. 필요할 때 중요부서에 발탁해 혀처럼 부려먹다가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거나, 자기영달을 위한 권력욕에 영합하지 않을 때는 토사구팽당한다.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횡포에 대응할 뾰족한 방법은 없다. `무거운 절 떠나기보다 가벼운 중 떠나는 게 났다`는 속담처럼 맘 비우고 이직하는 게 상책이다. 물론 옳고 그름은 많은 시간이 지난 후 그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자신이 행한 대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인생이다. 정도가 아니면 함부로 취할 바가 아니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환공은 포숙아의 천거로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했다. 환공은 관중을 발탁한 후 여유작작하며 정사를 관중에게 맡겨버렸다. 이를 본 시기심 많은 신하들은 그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준다고 간언했다. 그러나 환공은 초지일관 관중에 대한 신뢰로 `용인물의`함으로써 제나라는 국운이 융성해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제 환공은 관중의 서슴없는 고언을 경청하며 그를 믿고 정사를 맡긴 것이다. 이처럼 현명한 군주와 올곧은 정신(貞臣)의 합작은 명품나라를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한신. 노관열전`을 보면, 한고조 유방이 등용한 한신은 전공에 대한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한나라 조정에 반기를 들고 삼합의 봉기를 도모한다. 유방은 한신의 용명이 아까워 항복하고 돌아오면 봉토를 주어 제후국을 세워주겠다고 회유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거절하고 대항하다 한산대전에서 죽임을 당했다. BC 473년 월나라 전략가 범려는 문종과 함께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는 구천의 사람 됨됨이 신뢰 못할 위인이라 여겨 토사구팽을 피해 월나라를 떠났다. 그러나 문종은 범려의 충고를 무시하고 월나라에 머물다 구천의 탄압을 받자 자결했다.

고려 말 이성계는 요동정벌에서 회군해 고려왕조를 타도함으로써 `의인물용`을 증명했다. 조선 선조 때 이순신은 그를 등용한 왕이 `용인물의`를 지키지 않고 팽했지만 반역하지 않고 살신성인했다. 그는 선조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남아 한나라 한신과 비교되는 구국의 성웅이 됐다. 조선의 대유학자 유정원은 <역해참고>에서 `백성을 포용하고 무리를 기르는 것은 군대에서만 시행하는 것이 아니다. 천자는 천하를 다스리고, 제후는 나라를 다스리고, 경과 대부는 그들의 가문을 다스린다.`고 했다. 이는 상하 간에 굳은 신뢰가 전제돼야 그 다스림이 올바르게 이뤄지므로, 지도자는 지난 역사를 거울삼아 `의인물용 용인물의`해야 함을 말한다. 주역 `지수사괘` 상전에는 `대지가 물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 지수사괘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대지처럼 백성을 끌어안고 키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조선의 유학자 서유신은 <역의의언>에서 `무엇으로 백성을 포용할 것인가. 너그러움과 두려움이다. 무엇으로 백성을 모을 것인가. 은혜와 생기를 주는 것이다. 군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마치 땅이 만물을 실을 수 있고, 저장할 수 있는 이치와 같다`고 했다.(장영동. 생생주역) 정치의 계절을 맞아 여야 대통령 바라기들의 애민절규(?)가 눈물겹다. 장차 이 나라의 명운을 책임질 최고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다. 우리 모두 `의인물용 용인물의`의 함의를 곰곰이, 냉철하게 되새겨 봐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진영논리의 포로가 되어 반목과 극한대립의 국론분열을 조장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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