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7:34 (금)
바로! 이 사람 노경원 인제대 교수(음악학과)
바로! 이 사람 노경원 인제대 교수(음악학과)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1.08.01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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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왕도 알리는 ‘김해국제음악제’ 선율로 세계인을 매료시키다
노경원 교수가 ‘김해국제음악제’를 찾은 관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노경원 교수가 ‘김해국제음악제’를 찾은 관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국내 최초 피아노 국제음악제 명성

지역 음악학도 세계적 안목 키워줘

2008년부터 집행위원장ㆍ총감독 맡아

16년 동안 연주자 1000여명 찾아

예산ㆍ관심 부족으로 어려움 겪기도

시민ㆍ단체 한마음 ‘모두 음악제’로

“세계적 음악제 함께 만들어가야”

AD 42년 가야 건국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김해시는 춤과 노래를 숭상한 가야인들의 예술혼까지 품고 있다. 2000년 전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황금알 6개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구간(九干)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발을 구르고 춤을 췄다. 금관가야의 건국 이야기에 나오는 가무(歌舞) 숭상이 오늘에까지 이어졌을까. 김해에서 가야 왕도의 속살이 드러나면서 가야의 숨결이 더욱 또렷해지고 있다.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연주한 세계적인 연주자들.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연주한 세계적인 연주자들.

김해에서 열리는 ‘김해국제음악제’는 2006년 처음 열렸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피아노 국제 음악제를 열겠다는 외침이 아름다운 선율로 만들어졌다. 김해국제음악제의 태동을 이끈 사람은 노경원 인제대 교수(52)다. 김해국제음악제 조직위원장 겸 총감독을 맡고 있다. 노 교수는 김해의 역사성뿐 아니라 세계적 수준의 공연장에서 세계적인 음악제가 있어야 한다는데 생각이 꽂혔다. 시대를 앞서가는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뛰어난 음악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를 소망했다. 지난 16년 동안 노 교수의 생각은 하나씩 결실을 맺으면서 김해국제음악제는 국내 3대 최장 국제음악제 가운데 하나가 됐다. 여기서 아쉬운 대목은 국제음악제로서 위상과 내용에 손색이 없는 김해국제음악제가 진작 김해시민들이 잘 모르고 지역 예술단체와 지자체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음악제로서 구색을 갖춘 김해국제음악제에서 더욱 김해적이면서 세계적인 무대가 펼쳐지기 위해서는 ‘세계적’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지원이 따라야 한다. 올바른 가야 역사를 땅속에 묻어 놓고 가야사 복원을 말하는 어리석은 행태가 김해를 세계의 도시로 알릴 수 있는 김해국제음악제를 무대 중심에서 밀어내는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2020년 김해국제음악제 콩쿠르 입상자 시상식.
2020년 김해국제음악제 콩쿠르 입상자 시상식.

문화ㆍ국제도시 김해의 위상을 높인 김해국제음악제 무대에는 지금까지 국내외 연주자 1000여 명이 섰다. 김해를 찾은 국외 연주자와 방문객은 150여 명에 이른다. 김해국제음악제의 위상은 수도권에서뿐 아니라 일본, 중국에서 찾아오는 관람객의 발걸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음악가가 김해 무대에 선다는 의미는 지역 음악학도들에게 세계적인 안목과 비전을 키우는 계기가 되고 김해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 향유의 기회를 준다는 데 있지요”라는 노경원 교수는 “국내에서 소개되지 않았던 초연 작품과 유명 작품을 무대에 올려 다른 음악제와 차별화해 눈길을 끌었다”고 말한다.

외국 연주자들에게 사인을 받는 학생들.
외국 연주자들에게 사인을 받는 학생들.

김해국제음악제는 2006년 ‘슈만의 피아노 세계’를 타이틀로 6일간 펼치면서 첫 문을 열었다. 그 당시 노 교수는 2003년 인제대 음악학과 첫 교수로 임용돼 차별화된 음악교육을 하던 가운데 세계 최상급 수준의 국제음악제를 향한 첫 무대를 마련한 것이다.

실제 제1회 김해국제음악제는 2008년에 열렸다. 브람스 탄생 175주년을 맞아 ‘브람스의 음악 세계’를 일주일간 펼쳤다. 제2회는 2009년 ‘하이든(서거 200주년)과 멘델스존(탄생 200주년) 그리고 슈베르트….’ 주제로 열렸다. 제3회는 2010년 ‘쇼팽과 슈만의 음악 세계’, 제4회는 2011년 ‘리스트(탄생 200주년)와 베토벤의 음악 세계’, 제5회는 2012년 드뷔시 탄생 150주년 기념 ‘프랑스 음악과의 랑데부’를 펼쳤다. 제6회는 2013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세계’(탄생 140주년 서거 70주년 기념), 제7회는 2014년 ‘바로크의 시대로’, 제8회는 2015년 ‘스크리아빈(서거 100주년)과 시벨리우스(탄생 150주년)’, 제9회는 2016년 ‘모차르트 그리고 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를 타이틀로 열렸다. 2017년 열린 제10회 김해국제음악제는 9월 한 달 동안 10년간 프로그램 가운데 최고의 작품과 연주자를 선정해 무대에 올려 의미를 더했다. 최대 규모로 지난 10년의 음악제를 결산하면서 소아 청소년 환우 돕기에까지 아름다운 마음을 보탰다. 제11회는 2018년 ‘드뷔시와 프랑스 감성 속으로…’, 제12회는 가족을 주제로 ‘모차르트, 슈만과 만나는 음악 여행, 제13회는 2020년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선율이 흘렀다. 특히 가족 클래식 뮤지컬 ‘들리나요, 베토벤 아저씨?’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 큰 반응을 얻었다.

제5회 음악제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프랑스 출신으로 최초로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에 입상하고 베를린 음대 교수로 있는 파스칼 드봐이용의 피아노 독주회, 홈멜 콩쿠르 우승, 리즈ㆍ바하 콩쿠르 2위 입상자인 앤드류 브로우넬 피아노 독주회가 열렸다. 비오티 콩쿠르 등에서 입상한 최희연 서울대 교수는 피날레 콘서트에서 피아노 에튀드 전곡은 연주해 박수를 받았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 현대음악 작곡가 앙리 뒤띠유를 추적하는 다큐를 통해 프랑스 음악을 여행하고, 우수 신인 음악회에서 차세대 주역의 탁월한 무대가 또한 격을 높였다. 마스트 클래스 운영으로 서울에서뿐 아니라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렸다.

노 교수는 열네 차례 국제음악제를 진행하면서 그만두고 싶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예산 문제로 행사를 축소하기도 했지만 거의 혼자서 대규모 국제대회를 치르는 압박감은 심했을 게 분명하다. 여기에 생각보다 주위의 손길이 별로 더해지지 못해 강한 추진력이 무뎌졌을 수도 있다. 세계 유명 연주자들을 초청하는데 노 교수의 ‘인맥’을 통해 명성에 걸맞은 대우도 하지 않고 초청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어린이를 위한 공연 후 기념사진.
어린이를 위한 공연 후 기념사진.

“음악 세계의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의 파도에 싸여 주저앉고 싶은 적이 많았어요. 김해국제음악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작업은 사명이 없이는 힘들지요. 지금까지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더 험난한 환경이 될 것 같아요.” 노 교수의 손에서 거의 만들어진 김해국제음악제가 이제는 김해 공동체의 자산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여러 단체와 뜻있는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지역 공동체의 마음이 모여 김해국제음악제의 선율이 가야 왕도 김해를 더 찬란하게 빚어내기를 바라는 바람이 크기 때문이다.

김해국제음악제는 지금까지 여러 계층을 아우르는 음악제로 이름을 높였다. 유아 클래식 공연과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 음악도를 위한 콩쿠르 개최, 성인을 위한 클래식 프로그램 운영과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무대를 선보였다.

2021 김해국제음악제 피아노 콩쿠르&우수신인 오디션 포스터.
2021 김해국제음악제 피아노 콩쿠르&우수신인 오디션 포스터.

“김해국제음악제는 예산을 수억 원씩 쓰는 다른 음악제보다 더 수준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김해를 무대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국제음악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몇 명 특정인이 만들어 갈 수는 없어요. 유명 음악제가 있는 도시의 시민들이 그 음악제에 자부심을 갖듯이, 김해국제음악제가 가야 2000년의 찬란한 역사 위에서 역사문화 도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온 시민이 관심을 기울여서 모두의 음악제로 만들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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