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고무신 ①
하얀 고무신 ①
  • 이은정
  • 승인 2021.07.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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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신은 신발은 편해서 좋고

하얀색이 돋보이는 새 신발을

신으면 든든해서 좋다
이은정 수필가
이은정 수필가

어슴푸레 먼동이 터 오는 새벽이면 나는 어김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맨 먼저 대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이렇게 열린 대문은 날이 저물고 어두워져서야 닫힌다. 낮에 동네 마실을 가보면 집들의 대문이 거의 다 열려있다. 농촌의 하루가 아침에 대문을 열며 시작되고 저녁에 닫으면서 끝난다. 종일 닫혀있는 도시의 집들과는 다른 풍경이다.

대문을 열며 나의 하루도 시작된다. 열린 대문 앞에서 기지개를 한 번 켠 후에 고무신을 신고 텃밭으로 나가서. 여러 가지 채소들의 상태를 살펴본다. 그리고는 들길로 향한 새벽 산책의 걷기 운동이 시작된다. 어깨와 허리를 곧게 편 후, 발의 뒤꿈치를 먼저 딛고, 새끼발가락, 엄지 순으로 두 팔을 흔들며 걷는 건강 보행을 한다. 바른 자세로 걸을 수 있다는 게 참으로 큰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으면 정신이 맑아진다. 머릿속을 어지럽게 채우고 있던 낱말이나 문장들을 정리하며 글쓰기 연습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심호흡하면서 들이 마시는 새벽 공기는 계절과 날씨와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매번 다르게 다가오니 더욱 신선해 보이고 고무신으로 발맘발맘 거리를 재며 걷는 발바닥의 촉감도 좋다. 험한 자갈길이나 고운 모랫길, 오르막 내리막 등의 도로 사정이 맨발로 걷는 것처럼 고스란히 발끝으로 전해져 오니 촌사람인 나는 이런 느낌이 그저 편하고 좋다.

내가 신는 하얀 고무신은 코가 뾰족한 여자용 고무신이 아니고 바닥이 펑퍼짐한 남자용 신발이다, 일명 백고무신이라고도 하는 이 신발은 바닥에 흙이 잘 묻지 않고 묻어도 발가락에 신발을 걸치고 탈탈 털어버리면 그만이어서 시골길에서 신고 다니기에 편하다. 여름에 계곡으로 피서 갈 때도 가방 속에 챙겨 가면 물속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 신발은 우리의 부모님 세대에서 많이 신었고, 절의 스님들은 요즘에도 즐겨 신는 신발이기도 하다. 사찰을 방문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요사채의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하얀 고무신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잿빛 가사에 바랑을 짊어지고 하얀 고무신을 신은 어느 스님의 뒷모습을 생각하며 그 신발을 신는 것에 어떤 자부심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오래 신은 신발은 편해서 좋고, 하얀색이 돋보이는 새 신발을 신으면 든든해서 좋다.

나이가 들수록 몸의 근육이 줄어들고 평형감각이 둔해져서 멋보다는 편한 신발을 찾다 보니 내가 외출할 때 신는 구두 같은 것들도 대부분 고무신을 닮은 펑퍼짐한 신발들이다. 또래 친구들도 비슷한 성향 들이라 서로의 신발을 보며 여포 신발 신었다고 웃기도 한다. `여포`란 여자이기를 포기했다는 뜻의 신조어라고 한다. 굽 높은 신발을 신고 멋을 낸 친구를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따라 하고 싶지는 않으니 마음이 그만큼 늙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신는 하얀 고무신의 역사는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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