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5:09 (토)
명작 `골짜기의 백합`
명작 `골짜기의 백합`
  • 이광수
  • 승인 2021.07.25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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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가 쓴 <골짜기의 백합>은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청년과 귀부인의 사랑을 그린 연애소설이다. 이 소설은 발자크의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그는 실제로 자기 나이보다 두 배나 많은 베르니라는 귀족부인을 연모했다. 22세의 혈기 왕성한 청년기에 느낄 수 있는 불꽃 같은 사랑이었다. 발자크의 명언인 `남자의 첫사랑을 만족시켜주는 것은 여자의 마지막 사랑뿐이다`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발자크가 활동했던 시기의 프랑스는 남녀 간에 자유분방한 연애가 풍미하던 시대였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떳떳하지 못한 이성 관계를 합리화시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명작 연애소설이 많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후 왕정체제가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다. 귀족계급에 반기를 든 자본주의 부르주아지계급의 상승기였다. 이때 자본주의 신봉자이자 실천가였던 발자크는 열렬한 나폴레옹 숭배자였다. 17세 때 부친의 권유로 소르본느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 공증인 일에 잠시 종사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문학가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대학을 중퇴했다. 22세가 되던 해 그는 베르니 부인의 후원으로 소설 <골짜기의 백합>을 출간했다. 이 소설은 그녀에 대한 연모의 정을 소설속의 인물을 통해 아름답게 승화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정통 귀족 출신 청년 펠릭스는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자랐다. 어느 날 무도회장에 갔다가 백작부인 앙리에트를 본 순간 큐피드의 화살이 그의 가슴에 꽂혀 버린다. 그녀를 향한 연모의 정은 시작되었지만 단정한 그녀는 그와의 관계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오히려 딸인 마들렌과 연결시켜 주려한다. 그러나 그녀를 향한 펠릭스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펠릭스를 아낀 그녀는 그가 프랑스 상류사회에 데뷔하도록 도움을 주며 순수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녀에 대한 사랑이 불가능함을 안 팰릭스는 어느 후작부인의 유혹에 넘어가 사랑 없는 애욕에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앙리에트가 병에 걸려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동안 가슴에 품었던 펠릭스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열어 보인다. "당신이 없는 골짜기는 나에겐 쓸쓸하기만 해요. 당신이 없으면…" 그동안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알게 된 펠릭스는 절망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에게 긴 편지를 남긴다. 그 편지의 끝은 이렇다."나는 곧 골짜기의 품에 안기게 될 겁니다. 당신은 그곳에 자주 들려주시겠지요?" 이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안타깝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펠릭스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가슴으로만 느끼고 속울음 앓았던 앙리에트.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모순의 함정에 빠져 사는 것 같다. 이 소설을 평설한 작가 송정림의 절절한 외침이 명치끝을 아리게 한다. `물길을 막다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끝내 터져버린 홍수처럼 사랑을 힘겹게 거부하다 수명을 줄인 앙리에트는 골짜기에 핀 한 떨기 백합 같은 여자임이 분명하다. 세상의 모든 인연을 다 끊고서라도 그에게 닿고 싶은 사랑. 내게 붙여진 세상의 모든 이름표를 떼어 놓고 그의 연인이라는 이름표 하나만 달고 싶은 사랑. 곁에 있으면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늘 보고프고 그리운 사랑. 그래서 마치 사랑을 하는 동안 수명이 반으로 줄어들 것만 같은 사랑. 그 사랑이 빨아들인 지독한 독으로 육체와 영혼을 죽음으로 태워버리는 잔인한 사랑.` 소설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발자크의 명작에 바치는 거룩한 사랑의 헌사다. 누구나 진정한 사랑을 꿈꾸지만 머뭇거리다가 허송세월한다. 오직 용기 있는 자만이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 청춘의 꿈과 삶을 포기한 N포세대의 슬픈 자화상이 내 지난날의 러브스토리와 겹쳐 오버랩한다. 사랑은 문득 불나방처럼 예고 없이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랑의 성취는 그 시대가 강요하는 허울뿐인 도덕률의 위선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어떤 사랑도 결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사랑의 아픔과 기쁨은 진실한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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