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9:36 (금)
인물 평가의 가벼움에 대하여
인물 평가의 가벼움에 대하여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21.07.22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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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를 두고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술 내용이 바뀌는

허약한 역사 토대를

두고 누구를 탓해야 하나.
류한열 편집국장

한국의 근현대사는 좌우의 극한 대립으로 대략 봉합한 상태에서 진영의 논리로 자의적 해석이 심하다.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독립운동의 공은 아예 무시되거나, 나라를 지키기 위한 반공 이념을 단순히 체제 유지에 갖다 붙이거나 하면서 한 진영에서는 부정선거로 모든 공을 덮고 과만으로 도배한다. 김구의 경우는 상하이 임시정부를 이끌고 항일무장 독립투쟁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한다. `백범일지 나의 소원`을 보면 김구의 독립을 위한 열정과 순수성에 감복한다. 이 지점에서 다시 김구를 들여다보면 민족주의자 김구의 행적에 여러 의문을 달 것들이 많다. 이 또한 시각을 달리하면 신화가 벗겨지고 초라한 형색만 남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큰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다르다. 해방 후 좌우충돌에서 인물의 평가는 당연히 진영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었다. 50~60대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 공산당은 머리에 뿔을 단 괴물로 배웠고, 대학 시절에는 학생운동권의 이념화된 행위를 비판하기보다는 시대의 아픔을 짊어진 투사로 바라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하는 걸 보고 인물의 평가는 백팔십도로 다를 수 있다는데 흥미의 최고점을 때렸다. 김원봉은 좌익의 거두였고 남북이 서슬이 시퍼렇게 대치할 시절 간첩을 남파시키는 대장이었다. 영락없이 공산주의자인데, 큰 인물끼리는 통하는 게 있다고 해석해야 마음이 편하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지난 대선을 전후해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을 공모한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돼 22일 지사직을 상실했다. 재판 결과는 사법부의 판단이다. 형량의 무게도 사법부가 정한다. 법치를 서로 약속하고 벌인 재판에서 결과가 나오면 한쪽은 법치가 살아있다고 하고 다른 쪽은 법치가 죽었다고 야단이다. 정치적인 배경이 두텁게 깔린 재판에서는 양극단의 반응은 자연스레 맞선다. 이 또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진영 논리의 폐해다.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적폐 청산을 내세워 청소를 했는데 그 정권이 소멸하면 청소부가 청소당하는 악순환이 또한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김경수 전 지사의 낙마로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두터워지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남북이 갈린 냉정한 현실에서 이념논리는 상대를 두고 늘 살아있다. 이념은 경직된 이분법적 잣대로 나눌 수 없는 구석이 많지만 남과 북이 추종하는 국가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엄연한 기준은 살아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친일파 청산 실패 등 몇 차례의 큰 산을 넘지 못해 여전히 역사를 제자리에 세우지 못하고 있다. 현대사를 두고도 양 진영은 눈을 벌겋게 뜨고 대립하는 공간이 한두 곳이 아니다. 역사 교과서를 두고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술 내용이 바뀌는 허약한 역사 토대를 두고 누구를 탓해야 하나. 김경수 사태는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면 엄청난 소모전을 치러야 한다.

현재의 사건이 하나씩 쌓여 역사를 만든다. 역사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의 총합이다. 역사 바로 세우는 자체가 어불성설인지 모른다. 당대의 사람 마음을 누가 다 헤아린단 말인가. 김해시를 중심으로 한 가야의 역사를 두고 건국 연도부터 목소리를 달리한다. AD 42년 가야 건국을 주류 역사학자는 코웃음 친다. 주류 사학자는 "뭣도 모르는 소리"라고 하지만 다음 달 14일 (사)가야문화진흥원과 경남매일이 공동 주관하는 `가야사 정립 학술 토론회`가 김해서 열린다. 주류 사학자의 임나일본부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역사의 사실이 한 번 뒤집어지면 다시 뒤집기는 쉽지 않다. 그 속에는 학연, 지연, 더 나아가 희한한 사관의 그림자까지 들어있다.

현재의 역사에서 사람의 마음을 뺏어 참의 자리에 거짓을 넣으려는 시도는 좌절돼야 한다. 특히 좌우 이념을 극복 못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새벽을 지키려는 파수꾼이 많아야 한다. 일제 강점기 때 밀정이 버젓이 독립투사 행세를 했다면, 요즘에는 진영 논리를 내세워 거짓을 참이라고 하는 강변이 넘쳐난다. 실정법을 가차 없이 짓밟은 사람이 정치의 희생양이 된다면 우리 현대사에 또 다른 생채기를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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