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1:06 (금)
전반전과 후반전
전반전과 후반전
  • 이광수
  • 승인 2021.07.18 2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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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영국의 프로축구팀 토트넘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축구천재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보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 팽팽하게 접전을 벌이다가 손 선수가 전반전에 선제골을 터뜨리고 나면 이에 화답하듯 해리케인이 또 한 골을 보탠다. 그러나 후반전에 방심하다 상대 팀의 역공으로 3골을 먹고 역전패당하면 속상하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생중계를 해서 올빼미 눈으로 지는 경기를 보고나면 쉬 잠들지 못한다. 각종 스포츠경기에서 전반전에 잘해서 다 잡은 경기를 후반전에 추월당해지는 수가 허다하다. 타짜 판의 시쳇말로 `초장 끗발 파장 몽둥이 꼴`이 된 셈이다. 필자가 모 공단 재직 시 여자핸드볼 팀이 창단되어 관리하고 있었다. 중요경기 때는 단장으로 선수단을 이끌고 참가했다. 예상과는 달리 이길 수 있는 경기를 후반전에 뒷심 부족으로 어이없이 질 땐 화가 났다. 그러나 전반전에 고전하다 후반전에 극적으로 역전승할 때는 기분이 좋고 통쾌했다. 역시 운동경기는 전반전의 균형을 끝까지 이어나가 후반전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경기 전략상 유리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 전반기에 승승장구하다 후반기를 망치면 실패한 인생이 된다. 인생은 100m 단거리경주가 아니라 42.195㎞를 완주해야 하는 마라톤경주다. 성공과 실패의 명암은 현실에 극명하게 투영된다. 우리나라는 실패를 죄악시하고 용납하지 않는 승자 독식 사회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실패를 우려해 안전한 길만 찾는다. 경제가 호황을 누리며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70~80년대는 9급 공무원이나, 경찰직, 소방직, 초등학교 교원은 홀대(?)받는 직종이었다. 봉급도 적고(겨우 안 죽을 만큼 줬다), 비리까지 만연해 국민들의 인식도 나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공직과 교직은 젊은 층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자 부모들이 바라는 인기 직종이 됐다. 예전엔 웬만한 지방대생들조차 거들떠보지 않던 지방행정직 9급 공채에 SKY 출신도 응시한다고 한다. 요즘 `부부 공무원은 중소기업 사장보다 낫다`는 말이 회자될 만큼 딴 세상이 됐다.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했듯이 누가 이런 세상이 올 줄 알았겠는가.

한편, 근래 2030세대의 최대관심사는 가상화폐와 주식이다. 한방에 인생역전을 노린다. 멋지게 즐기며 살겠다는 욜로족의 진화된 행태다. 30~40대에 월급쟁이에서 탈출해 자기만의 인생을 살겠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운영시스템의 디지털화로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게 됐다. 조기명퇴의 묘수로 24~36개월치의 특별퇴직금과 자녀학자금, 건강검진비에 창업지원금까지 덤으로 준다고 한다. 예전과는 달리 이런 미끼에 조기퇴직하려는 3040세대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니 격세지감이 든다. 이제 평생직장의 개념은 공직을 제외하고는 사라진 느낌이 든다. 인생 전반기에 승부를 걸겠다는 용기는 가상하지만, 인생후반기에 뼈저린 실패를 경험한 필자로서는 일말의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물론 이런 풍조의 원인으로는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가격에 청춘들의 내 집 마련 꿈은 `희망 고문`이 되었다. 이에 따라 인생 전반기에 은퇴자금을 마련해 30~40대에 조기퇴직하려는 파이어족(FIRE)을 꿈꾸는 MZ세대의 영끌 패닉바잉(Panic Buying)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지만 `빛투`는 무모하고 위험하다. 불확실성이 엄존하는 예측불허의 미래는 온통 지뢰밭 투성이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생말년을 불행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100세 장수시대를 맞아 인생 여정도 그만큼 길어졌다. 얄궂게도 행운의 여신은 항상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시작은 좋으나 끝은 좋지 않다`는 유시무종(有始無終)과 `시작은 어렵고 힘들지만 끝은 좋다`는 무시유종(無始有終)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 전반기에 잘 나가다가 후반기에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급하게 먹은 떡이 체하듯이 인생은 멀리 길게 보고 살아야 한다. 살아보지 않은 인생여정은 언제 어디서 부비트랩을 잘못 밟아 터질지도 모른다. 운동경기의 전반전과 후반전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듯이, 우리 인생도 유시무종이 될지 무시유종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필자가 이 나이까지 살아온 인생 경험상 유시무종보다 무시유종이 정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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