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6:29 (수)
바로! 이 사람 김원자 화가(마산 맛산갤러리 ‘바람, 기억전’)
바로! 이 사람 김원자 화가(마산 맛산갤러리 ‘바람, 기억전’)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1.07.12 2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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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교감 속 피어난 작품 통해 희망의 빛을 전하지요”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길 소망하는 바람이 작품에 들어 있다”고 말하는 김원자 화가.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길 소망하는 바람이 작품에 들어 있다”고 말하는 김원자 화가.

27개 작품 걸고 관객맞이

목화 오브제로 바람 표현

어둠서 건진 빛의 세계

치열한 작가정신 오롯이

“자연 변화 추적 작품에”

이른 아침, 창원 북면 작업실(소향화실)에서 붓을 들면 창문 틈으로 찾아온 바람이 코끝에 상큼한 기억을 밀어 넣는다. 창문 밖 해바라기 밭에서는 작은 바람에도 미세한 몸부림으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와 귓전에 쟁쟁하게 울려 준다.

김원자 화가(58)는 바람과 인연이 깊다. 인생의 연속성 위에서 기억의 바람을 채우려는 지난한 몸부림을 짙은 화폭의 향기로 돋아 올린다. 김원자는 지난 1일부터 마산 맛산갤러리에서 일곱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다. 소향 김원자의 ‘바람, 기억전’이다.

김원자는 꽃을 사랑한다. 꽃을 향한 사랑을 추적해 가면 자연 관찰자로서의 손길에 머문다. 손길을 기다리는 꽃과의 교감에서 김원자의 그림은 태동하고, 바람의 기억들을 몰아넣어 화폭에 채운다. 꽃봉오리를 틔우기 위해 순간 파르르 떨리는 미세한 움직임조차도 관찰자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다. 김원자의 그림에서 깊이를 느끼는 것은 작품은 치열한 사유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인전에 김원자는 60호 1점, 50호 2점을 포함해 모두 27점을 걸었다. 김원자의 그림은 대부분 어두움을 깔고 있다. 어두움이 어두움으로만 끝나면 작품의 생명력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데 김원자의 어두움은 빛을 품은 일시적인 어두움이다.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어둠의 커튼이 그치고 환한 빛의 비춤을 안을 수 있다.

“새벽에 두세 시간 작업을 하고 낮 동안에 대여섯 시간 작업을 해요. 치열한 그림 그리기를 일삼아 하지요”라는 김원자는 치열한 작가 정신이 배어 있지 않은 작품은 겉모습만 번드르르한 색깔의 짜맞춤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식물이 나서 원숙한 아름다움까지 가는 길을 추적하는 작가의 눈을 통해 그림은 완숙의 미를 더 한층 고양시킨다. 김원자의 작품에는 역경을 딛고 일어났을 때 자신의 대담함을 선포하는 거대한 소리를 담고 있다. 작품의 깊이와 비례해 겉으로 드러나는 감동의 높이가 동시에 읽힌다.

김원자는 자기 동네에 꽃을 심고 풀을 뽑고 꽃이 제 자태를 뽐내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림의 피사체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화폭에 쏟아내는 빈틈없는 작가 정신은 작품에 온전히 스며들어 있다.

김원자의 작품은 여유가 아닌 채움에 무게가 실린다. 치열한 그림 그리기가 그림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듯이 채움에서 되레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놀라운 ‘반전의 미학’을 보인다. “화면의 꽉 채우지 않으면 허탈할 때가 있다”는 그의 말에는 자기만족을 위해 끝까지 줄달음치다 보면 만나는 자기 희열이 작품에 뿌려져 있다. 동네 빈 공간에 꽃씨를 뿌려 예쁜 화단을 만드는 마음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화폭에 씨를 뿌리고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고, 다시 바람이 와서 꽃대를 흔드는 미세한 움직임을 따라가고, 꽃봉오리에서 원숙한 얼굴 내밀 때 반갑게 맞은 마음까지 담는 연속적인 창작 과정은 실로 감탄스럽다.

김원자는 이번 개인전에 처음으로 오브제를 사용했다. 자신이 기른 목화를 따 화폭에서 바람을 표현했다. “목화는 처음 미색을 띠다 분홍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하얀색이 되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이번에 전시하는 10여 작품에 목화를 오브제로 사용했지요.”

한지 위에 아교를 뿌리고 먹을 먹이고 붓끝으로 덧칠을 반복하면서 나온 질감은 꽃의 생명력을 그대로 품는다. 화폭에서 꽃잎 하나하나의 생명의 소리가 나와 전체를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화음으로 만드는 김원자의 솜씨를 두고 ‘원숙한 손놀림’이라 감탄해도 무방하다. 바탕의 먹이 만드는 그림자에서 생명의 환희를 하나씩 일깨우는 붓놀림에는 무르익어 고개 숙이는 식물의 겸손까지 묻어있다. 종이 위에서 생명을 잉태한다면 그의 손에 ‘힘’이 들어있다 해도 타박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김원자의 화폭에서 볼 수 있는 둥근 원 이미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메타포다. 그는 작품 속에서 둥근 형태를 통해 자연의 찰나를 영원으로 이끌려는 작가의 욕심이 들어있다.

어둠에서 빛이

터져 나오고

생명의 소리가

색깔을 입으면

빛은 스르르

둥근 마음에 내려앉는다.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 김원자 화가.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 김원자 화가.

“영혼 없는 그림은 그리고 싶지 않아요. 그림 속에 삶과 철학이 녹아 있어야지요. 그래서 많이 생각하고 고치기를 반복하지요.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길 소망하는 바람이 작품에 들어있지요. 바람의 기억은 기다림에서 소망을 일깨우고 어둠에서 빛을 희망하는 손짓이지요.”

김원자는 내일 새벽에도 바람이 실어주는 기억을 붓끝에 모으고, 제철을 맞은 해바라기의 얼굴을 대하며 환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자연 사랑에서 길어 올린 작품이 매일 삶을 노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품을 보고 좋은 평을 하는 관람객을 보면 큰 보람을 느끼면서, 그림으로 무한한 공감을 할 수 있다는 데서 너무나 행복해요”라는 김원자의 끝없는 자연주의 그림 추구는 또 어떤 변화를 부를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 바람이 어디로 불지 알 수는 없지만 바람이 실어 오는 애틋한 미학은 마음속으로 불어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향 김원자의 ‘바람, 기억전’은 오는 1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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