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변화의 자연현상인가. 아니면 드라이해진 경쟁사회의 희생양인가. 방송계를 풍미하던 인기 개그코너가 방송프로에서 자취를 감췄다. 개그 프로에 출연했던 많은 개그맨들과 외부 스태프들은 아마 실직의 고통 속에 경제적으로도 무척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이다. 일부는 오락프로나 게임프로, MC로 전향해 활동하고 있으나 제한된 인원이다. 사실 우리 같은 구세대에게 개그프로 없는 TV는 앙꼬 없는 찐빵과도 같다. 몇 명씩 떼거리로 둘러 앉아 시시콜콜한 남 이야기나 하는 프로는 채널을 돌리고 만다. 차라리 옛날 드라마나 개그의 리바이벌 프로를 유선으로 시청한다. 7ㆍ80년대를 풍미하던 개그는 다소 저질스러운 억지 연기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90년대 이후 개그계의 자정노력과 알찬기획으로 2010년대까지는 호황을 누렸다. 밤 메인 시간대에 방영되어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웃고 즐기며 해소하기도 했다.
개그하면 현재 4ㆍ50대의 장년세대가 그 중심에 있다. 소위 사회나 직장에서 허리에 해당하는 중간계층을 말한다. 직책으로는 과장, 차장, 부장, 팀장급으로 그 조직의 핵심이다. 휘하에 많은 직원들을 통제하고 조직목표에 대한 확실한 비전도 갖고 있다. 그러나 시대 변화에 따라 직장에서의 위계질서가 수직적 체계에서 수평적 체계로 바뀜에 따라 팀 중심의 네트워크 체제로 급변했다. 이에 따라 2030세대들은 이들 4ㆍ50대를 통칭해 `아재`와 `개저씨`로 폄하하는 듯한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특히 요즘 직장 내 상급자의 갑질 논란과 성희롱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함에 따라 이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2030세대는 위계질서에 엄격한 낀 세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개성을 중시하는 분화된 조직을 선호한다.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성과급이 주어지기 때문에 어중간한 위치인 아재와 개저씨의 권위는 추락 일보 직전이다.
아재와 개저씨는 `아저씨`를 하대하는 표현이다. `아재`의 사전적 의미는 부모와 같은 항렬의 친족호칭으로 나보다 손위 일가를 친근감 있게 부르는 통칭이다. `개저씨`는 `개`라는 접두어가 붙어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상대방을 비난할 때 단골로 하는 말이 `개xx`, `개000`, `개 같은 x` 등으로 상대방을 비하하는 욕이다. 이는 더 나아가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는 `꼰대` 이미지를 극대화한 말로도 통한다. 영끌은 고집불통 노인을 꼰대라며 비하한다. 아재와 개저씨는 이 시대를 사는 진정한 어른의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 말이기에 젊은 층의 고민도 담겨있다. 비록 한물간 개그지만 배우 유해진과 이성민, 설경구가 방송과 영화에서 툭툭 던진 개그는 그 프로와 영화의 감초처럼 작용해 재미를 더했다. 세 연기자의 개그는 전에 보던 메아리 없는 개그가 아니라 한층 세련된 중년의 멋을 풍기는 개그여서 시청자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해진은 `아재파탈`로 유명하다. 사실상 아재열풍의 진원지는 유해진이다. 그는 TV `삼시세끼` 프로에 고정 출연하면서 소탈하고 편안한 인간적인 매력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밥을 시켜먹는다는 말을 `좀 데워-식혀(시켜)먹지 말고`라하고, 배가 나온 배역에겐 `촬영 안 할 때는 복근밥(볶은 밥)을 먹는 거 아니냐`로 훈수했다. 이성민은 42세에 `꼰대`같은 면도 있었지만 동네 사정을 살뜰히 챙기는 골목대장 같은 연기와 개그로 관객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 설경구는 뒤늦게 `아재파탈`에 진입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범죄조직의 2인자로 출연했다. 폼 나는 슈트차림에 개그연기로 신선한 매력을 풍겨 `쿠쿠`라는 애칭으로 젊은층의 인기를 끌었다. `아재파탈`은 아재+옴므파탈의 합성어로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관리가 잘된 매력 넘치는 친근한 중년의 아재를 말한다.
개그프로가 방송에서 사라진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그 만큼 삭막하고 팍팍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상화폐와 주식, 부동산 패닉바잉(Panic Buying)에 빠져 있다. `잘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게 문제`라는 말처럼, 우리 자신들을 잠시 뒤돌아봐야 할 때이다. 개그가 방송 프로에 재등장해서 함께 웃고 즐기는 `웃픈`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