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9:33 (목)
민이호학 불치하문
민이호학 불치하문
  • 이광수
  • 승인 2021.07.04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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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배움에 끝이 없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없는 진리다. 사람은 태어나서 부모의 언행을 듣고 보며 말과 행동을 따라 한다. 성장하면서 삶의 방식을 가정과 학교, 사회생활을 통해 배운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공부하면서 `아는 것이 힘이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새기며 학업에 매진한다. 물론 배움은 꼭 학교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우리 같은 구세대는 가방끈의 길고 짧음이 능력과 지식유무에 꼭 비례하지도 않았다. 비록 초등 졸업의 학력일지라도 주경야독으로 최고 지식인이나 경영자, 고급관료가 된 사례가 많았다. 지금은 고교까지 의무교육이 일반화 되고, 대학 졸업은 필수 선택코스가 되었다. 그러나 대학을 나오고도 목불식정(目不識丁)을 면할 정도로 지식 청맹과니가 양산된다니 유구무언이다.

논어 공야장편에 `민이호학 불치하문`(敏而好學 不恥下問)이라는 말이 있다. `영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며,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스승과 제자, 유식자와 무식자, 특정화된 사회계층에 상관없이 보고 배울 바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사는 이치나 삶의 지혜는 지위고하 여부에 상관없이 보고 본받을 점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노비라도 자기보다 한 자를 더 안다면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진리 앞에 겸손 하라는 말이다. 철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면서 제 잘났다고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요즘 내년 대통령 후보 선출을 앞두고 인두겁을 쓴 얼치기 정치인들이 제 잘났다고 우쭐대는 모습이 가관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무지라고 했듯이 인간의 지적능력엔 한계가 있다. 비록 만권의 책을 읽었거나 평생 학문에 정진한 대학자도 제 전공분야 외는 문외한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마치 자기가 세상 이치를 다 터득한 것처럼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은 무지의 자기 폭로일 뿐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빛의 속도로 급변하고 있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진리가 아닌 것으로 돌변하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일신우일신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광속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적응성의 위기감에 전전긍긍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지는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치하문`의 자세로 삶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세계 4대성인의 한 사람인 공자도 제자들과의 차문차답(且問且答)에서 `민이호학 불치하문`의 지혜를 찾았다. 공자는 51세의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주역(周易) 연구에 몰두해 <십익>이라는 <역전>을 완성했다. 40대에 이미 수천 명의 제자들로부터 추앙받는 성인이었지만 주역공부의 미진함을 깨닫고 위편삼절(韋編三絶) 하면서 주역 연구에 천착했다. 논어 술이편에 `앞으로 내가 몇 년 더 살아서 쉰 살이 되면 주역을 배워서 큰 잘못 없이 살다가 갈 수 있으리라.`고 했으니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도 대과 회시(會試)에서 다른 과목은 모두 통을 받았으나, 20대 초부터 10년을 공부한 주역과목에서 4등급(통, 약, 조, 불)중 조(지금의 C학점)를 받아 탄식했다고 한다. 서책을 통해 학문을 익히며 율곡 같은 학문동도와 논변하고, 제자들과 차문차답하면서 `불치하문`했기에 더욱 실망했을 것이다.

사람이 나이에 사로잡히면 `불치하문`은 기대할 수 없다. 젊은이나 나보다 학식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 창피하다고 생각하면, 나이 들어 굳어지는 머리로 인해 고집불통 꼰대 신세를 면치 못한다. 꼰대가 되면 젊은이는 물론 부부간이나, 부모자식 간에도 의사불통이 되어 외톨이신세로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비록 직접적인 소통은 적을 지라도 배움을 통해서 `불치하문`하면 외롭지 않다. 동학동도(同學同徒)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움을 통해서 세상 흐름에 맞춰 신지식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사고방식도 바뀌게 된다.

정신적인 젊음의 유지는 배움에서 오고 여기에 육체적인 건강도 덤으로 따라오므로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민이호학 불치하문`의 지혜는 바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로 가는 지름길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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