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6:33 (금)
`오래된 미래 국가` 구야국 그리고 김해 ①
`오래된 미래 국가` 구야국 그리고 김해 ①
  • 허영호
  • 승인 2021.06.17 2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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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호 김해문화원 부원장
허영호 김해문화원 부원장

태초에 땅이 있었고 땅이 있으매 미물이 생겼다. 미물이 볕을 받고 이슬을 머금으니 동물이 되더라. 동물이 앞발을 들어 두 다리로 걷게 되니 그 앞다리를 팔이라 부르고 그 팔로 도구를 쓰게 되니 이 동물을 두고 `사람`이라 하더라. 사람은 자기가 디딘 발아래 흙을 두고 지구(地球)라 하고 지구의 한 귀퉁이에 손톱만 한 작은 점 하나가 있었으니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구야국>이라고 적혔더라.

삼국지를 쓴 종족은 중국 한족(漢族)으로 그들의 심보가 고약해 주변의 이웃들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불렀는데 이, 융, 만, 적 등은 모두 오랑캐라는 뜻이며, 흉노(匈奴), 구야(狗耶)처럼 이웃 나라 이름에 흉할 흉자나 개 구자를 쓰기도 했다. 반면 그들 스스로는 중화(中華)라 하여 꽃 중의 꽃으로 불렀다.

구야국에 두 종족이 있었으니 대성동 세력과 양동리 세력이 그것이다. 지금이야 두 종족 간의 거리가 차로 10분 남짓에 불과 하지만 그 시절엔 그렇게 살았다. 대성동 부근에 살던 종족들이 힘이 조금 더 셌고 수로는 이 대성동 세력을 접수하고 차츰 주변 부족들을 통합해 나라를 세웠으니 가락(駕洛)이다.

가락국의 등장에는 대개 <3가지 미스터리>가 있다. 첫째 수로(首露) 탄강설화의 진실, 둘째 허황옥(許黃玉)의 출생지는 어디며 어떻게 가야 땅으로 왔는가, 셋째 불교(佛敎)는 언제 가야 땅에 유입됐는가 등이다. 살펴보자.

첫째 수로는 어디에서 왔는가. 가락국기에는 수로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사실일까? 아쉽지만 수로는 하늘에서 내려온 적도 없고 내려오지 않은 적도 없다. 무려 2000년 전의 일이 아닌가. 그저 역사는 신화를 증명해 나가며 밥벌이를 하면 되고, 신화는 역사의 영역을 넓혀 나가며 유희를 즐기면 된다. 모든 전쟁은 두 번 싸운다고 한다.

처음에는 전장에서 다음에는 기억에서. 역사의 전쟁에서 누가 오래 기억에 남아 승리하느냐는 자명하다. 핏대 센 놈이다. 가야사 역시 마찬가지다. 고대 일본이 가야 일대를 지배하기 위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두었다는 소위 <남선경영론>은 이미 여러 고고학적 자료로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일 양국에서 씨알이 먹히는 것은 일본의 핏대가 국제사회에서 한국보다 세기 때문이다. 우리 땅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설화에는 대개 남성(아버지)은 하늘에서 여성(어머니)은 땅이나 물에서 등장한다. `天男地女`. 수직과 수직 혹은 수평과 수평의 밋밋한 만남보다 하늘의 수직과 지평선 너머 수평의 만남이 좀 더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어쨌든 수로는 하늘에서 내려와 쇠로 만든 잘 벼린 칼을 가지고 구야국 일대를 차례로 정복하고 스스로 왕(Ruler)이 되었다. 이때가 서기 42년이다.

잠깐 42년의 유래를 살펴보자. 예수라는 유대인이 있었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인 이스라엘 왕국 북부 지역인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도와 목수 뒷바라지도 좀 했다. 그가 당시 잘 나가던 요한 아저씨에게 세례를 받으러 가자 "당신은 나에게 세례를 받을 분이 아니다"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비범했던 모양이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이미 12살 적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였다고도 한다.

장성하여 뜻한 바가 있어 중앙아시아와 멀리 인도까지 도(道)를 구하러 다녔다. 힌두교 조로아스트교 불교 요가 등 다양한 종교를 접한 그는 영적으로 더욱 성숙되어 귀향했다. 그는 영적 과실을 이웃과 나누려 했으나 `선량한 풍속을 해한 죄`로 로마 법정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는 생전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요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실제 그를 진심으로 믿은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남아 그의 음성은 오늘에까지 전한다.

팔레스타인에 예수가 있었다면 조선에는 수운 최재우(1824~1864)가 있다. 현묘지도(玄妙之道)의 도를 깨친 후 <동학>이라 명명하고 불과 4년의 포덕으로 그 불길은 조선 천지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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