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0:35 (토)
걷기 좋은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다
걷기 좋은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다
  • 황원식 사회부 기자
  • 승인 2021.06.15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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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식 사회부 기자
황원식 사회부 기자

창원에서만 살아오다가 직장 때문에 몇 년간 타 지역 A도시에서 머문 적이 있다. 그 곳은 90년대에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갑작스레 도시로 형성됐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그곳이 걷기에 쾌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말에 창원에 와서 걸으니 숨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두 도시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우선, A도시는 인도가 너무 좁았다. 옆에 사람들과 같이 걸으면 불편할 정도였다. 그리고 자동차들이 인도 바로 옆으로 쌩쌩 지나다녀 위험했다. 반면 창원 의창ㆍ성산구는 계획도시라 그런지 인도가 넓고 차와 인도 사이에 자전거 도로와 화단이 설치된 곳이 많아 안정감이 들었다.

길가의 휴식 공간도 차이가 났다. A도시에는 길을 걷다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도로 근처에 공원도 부족했고, 심지어 도로에 나무도 많이 없었다. 물론 도시에 대규모 공원이 있긴 했지만 주거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창원은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들이 분산 돼 있어 접근성이 좋았다. 특히 지난 몇 년 간 창원에는 키가 큰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많이 생겨 눈이 즐거울 뿐만 아니라 인도에 그늘도 만들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창원은 길가에 나무벤치가 많이 있다. 지난해 창원에 사는 한 유튜버(팬저)가 창원시 의창구 동정상가에서 금호온천까지 총 1.3㎞ 구간 길가에 벤치가 몇 개 있는지 세어본 영상이 있다. 총 58개였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에 따르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900m 구간에는 벤치가 4개 밖에 없다.

아울러 A도시는 모양이 비슷비슷한 빌라와 아파트가 늘어서 있어 걸어 다닐 때 풍경이 지루하고 단조로운 반면, 창원은 외관이 다양한 2층 주택가 비중이 많아 보는 재미가 있다. 또 저층 주택은 주변의 녹지와도 잘 어울려 심리적 안정을 준다.

같은 이유에서 창원 진해ㆍ마산 구도심 또한 걷기 좋다. 변화무쌍한 그곳들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사람들의 생활이 그대로 묻어난 오래된 길들이 많다. 그 길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많은 추억을 떠오르게 해준다.

물론 자동차 비중이 높은 창원이 걷기에 최상의 조건은 아니겠지만, 위에서 말한 몇 가지 요소들이 걷는 즐거움을 더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결국 걷기에 좋은 곳이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걷는다는 것은 태고적부터 이어온 인류의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문명의 이기에도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래서 걷기 좋으면 그 도시에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다행히 이제는 무분별한 도시 건설보다는 기존의 도심을 보호하면서 아름다움을 덧칠하는 도시재생이 유행하고 있다. 경남도에서도 산업과 소비의 효율성을 따지기보다 인간중심적인 걷기 좋은 도시로 변화해야 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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