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7:34 (금)
풀의 노래로 행복한 지역민
풀의 노래로 행복한 지역민
  • 백미늠
  • 승인 2021.06.14 2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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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늠 시인
백미늠 시인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공원이 있어 기분이 좋다.

아침저녁은 물론이고 새벽이나 늦은 밤에도 입은 옷 그대로 슬리퍼를 신고도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축복이다. 집 앞이 공원으로 바뀌고부터는 속상하고 지치고 고단한 심상들이 쉽게 전환되고 여유로움으로 더 건강해지고 풍요해졌음을 느낀다. 코로나로부터 지역민을 지켜주는 것에 공원이 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수평으로 길게 늘어진 공원길로 학교 가고 시장 가고 은행가고 병원 가고 도서관 가고 교회 가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처럼 기차 공원 길로 어디든 갈 수 있다. 화단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와 꽃들 그리고 다양한 편의시설과 조경이 잘 조성되어 있고 관리도 잘 되는 편이다.

그런데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공원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공원이 풀 군락지로 변한 것이다. 공원화단뿐만 아니라 공원 주변 길가나 보도블록 틈새까지 풀들이 점령하고 말았다. `예쁘게 보려면 꽃 아닌 것이 없고 베려고 들면 풀 아닌 것이 없다`라고 했던가. 지금 진영역사 공원은 혁명에 성공한 풀들의 영토다. 혁명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라고 한다.

네이버나 구글에 꽃 검색 식물검색을 해도 알 수 없는 이름 모를 풀들이 족히 30여 종은 된다. `풀이 나무가 될 때까지 도대체 공원 관리과는 뭐 하는 거야` 몇 달 전부터 우리 지역에 코로나 확산이 심각해져 노인 일자리나 공공근로 등의 일자리 정책이 중단됐다고 했다.

산책하면서 손에 잡히는 대로 뽑으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풀뿌리의 힘은 대단하고 위대하다. `풀한테는 못 이기겠다, 풀한테는 졌다` 옹골찬 노인의 말이 생각났다. 어느날 이른 아침 공원을 산책하며 풀을 관찰하는 동안 풀에 그만 매료되고 말았다.

좋은 땅에 의도되어 관리되고 있는 정원수보다 돌 틈이나 구석진 곳에 스스로 자리 잡고 더 푸르게, 더 크게 성장하는 풀들을 보라!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보다 이름 없는 풀들이 나래를 활짝 펴고 활개 치는 기개는 적극적인 시민 정신을 보는 것 같아흐뭇했다. 공원관리과에서는 풀에 맡겨두고 스스로 꺾일 때까지 지켜보기를 제안하고 싶다. `지역 문제해결 플랫폼 경남`에서 풀에 대한 나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풀 나무에도 이름표를 달아주고 싶다.

엉겅퀴, 씀바귀, 마디풀, 덩굴손이, 도꼬마리, 사막 풀 등 천대받는 풀이지만 많은 깨달음을 준다. 시민 정신을 닮은 야생풀 군락지 진영역사 공원에서 강인함과 지혜와 통찰을 배우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영위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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