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0:24 (수)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 하성재
  • 승인 2021.06.14 2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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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재 선한청지기공동체 대표 굿서번트 리더십센터 소장
하성재 선한청지기공동체 대표 굿서번트 리더십센터 소장

그리스 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티카라는 도시에 프로크루테스라는 9척 거인의 강도가 살았다. 그는 워낙 잔인하고 악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강가에 그럴듯한 여관을 지어놓고, 자신의 땅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보이면, 친절한 척 초대해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 그는 여행객을 침대에 매어 놓고, 침대와 그 사람의 키를 대어 보아서, 침대보다 키가 큰 사람은 큰 만큼 발을 자르거나 머리를 잘라 죽이고, 침대보다 작은 사람은 침대 길이만큼 잡아당겨서 죽였다고 한다. 침대에 딱 맞는 사람은 살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큰 사람에게는 작은 침대를, 작은 사람에게는 큰 침대를 주며 언제나 자기 기준에 맞춰 사람을 해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며 악명을 떨치던 프로크루데스는 후에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에게 잡혀 이제껏 자신이 해왔던 방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 이야기는 유럽 각국으로 전설로 전해졌고, 오늘날에는 자기 편리한 대로 세상일을 판단하고 처리하거나, 자신의 기준대로 타인을 이리저리 재단하면서 억지로 남들을 자신에게 맞추려는 사람이나 태도를 풍자하여 `프루크루테스의 침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말로 가장 가까운 말로는 `아전인수`(我田引水)일 것이다.

탁월한 경제학자 갈브레이드는 2차 대전 이후의 서구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또 다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1950년대 이후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한 마디로 말해 `절대의 붕괴`를 말한다. 더 이상 절대진리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나 요구되는 절대사랑도 없다. 상황 변화와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오늘의 사랑이 내일의 증오가 된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절대규범이 무너졌다. "제발 나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말라"고 외친다. 바야흐로 절대성은 무너지고 상대성이 제왕으로 군림하는 사회가 되었다. 모든 것은 각자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상대화됐다. 이 시대야말로 각 개인이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를 하나씩 가진 시대가 되었다.

지난 2007년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있는 21개 도서관에서는 대출 실적이 저조한 책들을 골라 퇴출시키기로 했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인기 없는 책들은 추방시키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중에는 헤밍웨이의 소설 작품들과 디킨슨의 시집도 들어있었다. 이 책들은 1년 동안 한 번도 사람들에게 대출된 적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외면 당한 책은 그것이 비록 과거 인류의 정신적 유산이었다고 해도 예외는 없다는 것이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루크루테스의 침대가 판치는 사회는 불행하다. 그것은 공정한 잣대가 없음을 의미 한다. 분명 자기모순이 있음에도, 이러한 프레임을 만들어서 진영논리나 신앙논리로 효과를 보는 정치집단이나 특정 종교집단이 있는 것이 현상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점집이 호황이고, 사회가 혼란할수록 예언이 성행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보아왔다. 그럼에도 이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의 증거다. 작은 것에는 그토록 악착스러우면서도, 정작 인생을 좌우하는 크고 중요한 선택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다. 그 방면에 특별히 눈이 밝은 사이비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이 틈새를 이용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치고 평화를 내세우지 않는 역사가 없고, 이기적인 독선가 치고 사랑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얼굴마담 뒤에 오너의 이익이 숨어 있듯이 그럴듯한 명분 뒤에는 개인의 이해관계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의외로 무감각하다.

따라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생명존중과 일상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물리적인 전염병만이 아니라 극단으로 치닫던 인간정신도 치유되고 회복됐으면 한다. 더 이상 `내게 관련된 것은 로맨스요, 남과 연관된 것은 스캔들`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에게 스캔들이라면 내게도 스캔들이 되고, 내게 로맨스가 되는 것이라면 그에게도 로맨스가 될 때, 비로소 공정하고 그나마 살만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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