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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지리산에 나신 일곱 부처
칠불사- 지리산에 나신 일곱 부처
  • 도명 스님
  • 승인 2021.06.14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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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 정 담(山寺情談)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은 화려하진 않지만 후덕하게 만물을 품어주며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3개도에 걸쳐있는 민족의 영산이다.

이 후덕함과 신령스러운 기운 덕분에 사찰을 비롯한 다양한 수행단체와 3000명 이상의 도 닦는 수행자들이 골짝마다 머물며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처럼 인류 유사 이래로 인구 비율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행자와 도인을 배출한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중국이나 인도는 워낙 인구가 많기에 도인도 많이 나오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작은 땅과 적은 인구에서 많은 수행자와 도인이 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수도하였던 분이고 그 유전자의 영향과 이 땅의 신령스러운 영적 기운 때문이라 생각된다.

한강 이남의 수행 터 중 가장 명당이라 일컫는 하동 칠불사 운상선원(雲上禪院)은 지리산에서 두 번째 높은 봉다 반야봉 남쪽에 새의 둥지처럼 능선이 휘감은 곳에 포근하게 자리하고 있다. 칠불사 입구에는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일종의 사찰 브랜드로 우리나라 제일의 선원이라는 것이다.

칠불사는 지혜가 제일이라는 문수보살을 신앙하는 문수도량으로 대학입시나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전국의 불자들이 많이 찾는 `기도 영험 도량`으로 이름나 있는데 그것은 가락국 칠 왕자가 수행하고 도통한 영민한 기운이 아직도 서려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칠불암이라는 절 이름은 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서 수도하여 부처를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것이라 하며 칠 왕자가 도를 이루고 받은 이름이 금왕광불, 금왕당불, 금왕상불, 금왕행불, 금왕향불, 금왕성불, 금왕공불이라 한다. 이름 앞에 성처럼 금왕(金王)이 붙는 것은 김수로왕의 아들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김씨 왕자여서 그런지 몰라도 `수로`,`수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왕을 뜻한다. 일곱 왕자가 수행한 터를 처음에는 구름 위에 있는 도량이라 하여 `운상원`(雲上院)이라 했는데 왕자들의 득도 후에 칠불암으로 되었다가 근래에 칠불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칠 왕자는 창원 성주사에서 출가하여 합천 가야산과 의령 수도산, 사천 와룡산을 거쳐 지리산 운상원에 온 지 2년 만인 서기 103년 팔월 보름에 드디어 득도하였다 한다.

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면 오른쪽에 동그란 `영지`(影池)라는 연못이 있는데 수로왕 내외와 칠 왕자의 전설이 내려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이다. 수로왕 부부가 궁을 떠나 칠 왕자를 보려고 운상원을 찾았을 때 그때마다 칠 왕자의 스승이었던 장유화상은 "지금은 만날 때가 아닙니다. 수행이 무르익어 곧 도를 이룰 것인데 지금 만나면 자칫 도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칠왕자가 보고 싶으면 저 아래에 연못을 파서 보면 비칠 것이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라고 수로왕 내외를 설득하여 아랫마을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이제나저제나 아들들의 득도를 기다리던 수로왕과 허왕후가 그 당시 내려가서 머문 곳이 범왕리(凡王里)와 대비촌(大妃村)이라 한다. 아래로 가면 수로왕이 허왕후와 칠 왕자를 만나러 가던 중 수로왕의 옷고름이 떨어져 경치 좋은 마을에 잠시 쉬면서 옷고름을 다시 맸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침점(針店)마을이 있다. 또 가야금의 명인인 옥보고 선인이 운상원에서 거문고를 퉁기면 아랫동네 우물에서 거문고 소리가 울려 나왔다 하여 정금(井琴)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칠불암에서 내려가 조금 떨어진 곳에 허북대(許北臺)라는 곳이 있는데 허왕후의 간청으로 수로왕에게 어머니의 허씨 성을 하사받은 수로왕의 둘째, 셋째 아들이 자식을 키우고 나이가 좀 들었을 때 우리들도 출가한 동생들처럼 도를 닦자 하고 입산하여 수도한 곳이 바로 허씨 성을 딴 허북대라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칠불사 주지이신 도응 스님이 요전에 말씀해 주셨는데 이러한 지명은 지금도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칠불사는 1948년 여수ㆍ순천 사건으로 전소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지금은 열반하신 제월 통광 큰 스님께서 1978년부터 15년에 걸쳐 불사하여 현재의 기틀을 닦았다. 칠불사는 근세 우리나라 차의 시조로 추앙받는 초의스님이 그곳에 머무시며 수행하였고 또 우리나라 차에 대한 것을 기록한 서적인 동다송(東茶頌)의 기초가 되는 다신전(茶神傳)을 초록한 곳이기도 하다. 마음을 맑히고 한 잔 차를 마시는 것과 고요히 참선을 하는 것이 한 맛이라는 초의스님의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가풍을 이어받은 선객들은 지금도 도를 깨우치기 위해 운상선원에서 치열한 정진을 하고 있다.

신령스러운 지리산과 명당 칠불사는 예부터 지금까지 가야불교의 도맥(道脈)이 활발하게 살아있는 생기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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