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7:04 (금)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 사는 불행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 사는 불행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21.06.10 2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대한 욕망을 감춘 채

땅을 벗 삼아 노후를

보내겠다는 소박한 꿈을

내세우는 모양새가

측은하기까지 하다.
류한열 편집국장

우리 사회에 정의가 제대로 흐르는지 의문을 다는 사람이 많다. 정의가 물처럼 흐르는 사회는 살맛이 넘치고, 정의가 막힌 사회는 반대로 죽을 맛이 넘친다. 정치권이든 노동권이든 `기득권 전쟁`에 휘말리면 정의는 아무짝에도 필요가 없다. 자기 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면 정의는 사라지고 욕망만 남는다. 욕망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강력한 힘이다. 정의는 순간에 힘을 쓰는 형이상학적인 힘이라면 욕망은 항상 확실하게 힘을 발휘하는 형이하학적인 힘이다. 노동 현장에서 적폐 청산을 외쳤던 거대 노동단체는 재벌이나 기득권 집단을 상대로 강력한 전쟁을 벌인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기득권과 맞서는 자신이 기득권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케팔로스는 `정의는 자신이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소크라테스는 `미치광이가 가져온 무기는 돌려주면 안 된다`고 반박한다. 폴레마르코스는 `정의는 서로 빚진 만큼 돌려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해를 입으면 선행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며 이 주장을 물리친다. `불의가 정의보다 이익이 된다`는 공격에 소크라테스는 `정의는 조화와 힘을 생산한다`고 말한다. 기원전 380년 전에 정의를 두고 명쾌하게 나눴는데 대화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소유 욕망의 기차를 타면 어떤 정의도 돌아보지 않는다. 부동산을 소유해서 천만금을 벌겠다는 욕망은 거침이 없다. 이번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을 수십 차례 내놓아도 욕망의 기차를 세울 수 없었다. 일부 주택 실소유자가 눈물을 흘리지만 부동산은 여전히 강력한 부 축재의 도구다. 고위직 공무원은 땅을 소유하기 위해 농업인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거대한 욕망을 감춘 채 땅을 벗 삼아 노후를 보내겠다는 소박한 꿈을 내세우는 모양새가 측은하기까지 하다. 여당 의원 12명이 부동산 투기 의혹의 덫에 걸렸다. 민주당이 출당 등 고강도 대책을 내놓아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있지만, `사회적 정의는 없다`는 걸 확인해 줘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에서 대화를 이어가면서 정의는 마땅한 것을 주는 행위라는 개념을 던진다. `마땅한 것`이 모호하지만 개인은 마땅한 것을 받아야 정의롭다고 여기는 것은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같은 대접을 받아야 공정한 사회에 살면서 정의를 호흡하는 삶을 누릴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ㆍ소득양극화 문제가 골이 더 깊어진 데에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가 한몫한다. 대기업 정규직이 툭 하면 파업을 해 고임금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을 때 비정규직은 생계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임금으로 배를 움켜잡아야 한다. 이런 역설이 넘치는 우리 사회는 결코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사회의 정의를 가로막으면서 정의의 수호천사처럼 행사하면 안 된다. 국회의원이 뒤에서 돈 되는 땅을 챙기고 앞에서 투기를 막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날뛰는 모습을 보면 정의가 참 가소로워진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정의가 없으면 사회는 허물어진다"고 했다. `어진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어도 사회는 지탱할 수 있지만 정의가 사라지면 우리 사회는 무너진다는 그 말이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거의 무너졌거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