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2:43 (토)
성인을 만나지 못한 기린이 슬프다
성인을 만나지 못한 기린이 슬프다
  • 허성원
  • 승인 2021.06.08 2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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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변리사 여시아해(如是我解)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나는 무리 중에서는 봉황이 가장 빼어나고, 달리는 무리 중에서는 기린이 가장 빼어난 짐승이다. 그래서 재능이 뛰어난 젊은이를 `기린아`라 부른다. 가공의 상서로운 동물 `기린`(麒麟)은 사슴의 몸과 소의 꼬리에 뿔이 하나로서, 인(仁)을 머금고 의(義)를 품으며(含仁懷義) 성인의 출현을 예고한다. 신성한 일각수라는 점에서 서양의 상상 속 동물 유니콘(Unicorn)과 닮았다.

이 고귀한 동물이 사람에게 잡혔다. 노애공(魯哀公)이 대야(大野)에서 사냥을 할 때(BC481년) 숙손씨의 마부가 잡아 왔는데, 상서롭지 못하다 여겨 죽여버렸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기린이 나타나는 것은 밝은 임금의 출현을 위함인데, 그때가 아닌 때에 나와서 해코지를 당하는구나. 내 이를 슬퍼하노라." 공자는 이 `획린`(獲麟, 기린을 잡다)에 대한 기재를 끝으로 춘추(春秋)의 집필을 멈추었고, 얼마 후 세상을 떴다. 그래서 `획린`은 절필(絶筆, 붓을 꺾다)이나 임종(臨終, 명을 다하다)의 뜻으로도 쓰인다.

공자 사후 1200년도 더 지나서 당나라 명 문장가 한유(韓愈)가 `획린해`(獲麟解)라는 글로 기린이 잡힌 연유를 풀었다.

"기린이 영물이며 그 상서로움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집에서 기르지 않으니 항상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기린이 있다 하더라도 알아보지 못한다.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것을 `상서롭지 않다`고 해도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린이 나오면, 반드시 성인이 있어 자신의 자리에 있을 것이다. 기린은 성인을 나오게 할 것이고, 성인은 필시 기린을 알 것이니, 결국 기린이 상서롭지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기린이 기린일 수 있는 까닭은 덕(德) 때문이지, 생김새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만약 기린이 출현했는데 성인을 맞이할 수 없다면, 곧 `상서롭지 않다`고 하여도 마땅하리라."

요컨대, 기린과 성인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니 기린이 출현하면 응당 성인이 나타나야 한다. 성인을 만난 기린은 상서롭다 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한 기린은 상서롭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획린해`는 뛰어난 인재가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 `기린`을 `유망한 스타트업`으로 대치해보아도 좋은 비유가 된다. 스타트업이 아무리 기린처럼 빼어났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메인스트림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없다. 그 `누군가`를 `성인`(聖人)이라 부르도록 하자. 스타트업에는 다양한 `성인`이 필요하다. 기업의 굳건한 틀을 구성하는 핵심 인력, 기회를 밝혀주는 조력자, 경영 역량을 보완하는 멘토와 전문가, 자금을 제공하는 투자자 등과 같은 귀인(貴人)이 바로 성인이라 할 것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에릭 슈미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 유튜브의 수전 워치츠키는 등은 달리 이의가 있을 수 없는 세계적인 기린아들이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그들 모두가 빌 캠벨이라는 걸출한 코치의 지도를 받았다는 점이다. 특히 수전 워치츠키는 구글의 창업 당시 자신의 차고를 빌려주어 그 거대한 기업이 탄생하게 하는 산파역을 맡았었다. 그리고 스타트업에 있어 가장 절실한 성인은 투자자일 것이다. 투자자는 스타트업에 희망과 생존력을 제공하는 천사(엔젤)이다. 이처럼 모든 성공한 리더들에게는 빌 캠벨과 같은 멘토, 수전 워치츠키와 같은 조력자, 엔젤투자자 등 많은 `성인`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적절한 성인을 만난 스타트업은 이 세상에 상서로운 존재가 되어 유니콘으로까지 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인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스타트업은 광활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제 힘껏 달려보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조롱이나 해코지의 대상이 되어 쓸쓸하게 사라지니, 공자를 슬프게 한 기린처럼, 많은 관련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스타트업은 부단히 탄생하고 있고 온갖 성인들은 다들 제 자리에 있다. 스타트업이 성인을 갈구하듯, 성인들도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기린과 같은 스타트업을 갈망한다. 하지만 기린임을 알아볼 수 없다면, 스타트업은 상서로울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성인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그러니 진정 달려보고자 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성인들 앞에 나서 스스로 기린임을 명백히 증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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