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6:22 (금)
`정치 1번지` 김해에 드리운 신화 그림자
`정치 1번지` 김해에 드리운 신화 그림자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21.05.20 2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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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서 퍼지는 강력한

정신 유대가 전국을 뒤덮을 수

있다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정치인들이

봉하를 찾아 노무현 정신으로

무장할 것이다.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경남의 정치 1번지는 단연코 김해다. 신임 여야 정당대표가 당무를 보기 전에 제일 먼저 찾는 곳이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다. 정치인이 출사표를 던지거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도 봉하를 찾는다. 이뿐 아니라 정치판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봉하를 부른다. 5월이 되면 노 전 대통령을 추도하기 위해 봉하 들녘은 노랗게 물든다. 봉하마을이 정치 1번지이면서 성지로 변한지는 오래다. 지난 15일에는 박병석 국회의장이 참배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방명록에 남겼다. 9일에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6일에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큰절을 올렸다. 같은날 이재명 경기지사도 헌화했다. 대권의 꿈도 봉하에서 피어오른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기리는 행위가 정신을 파는 행위가 되면 곤란하다. 정신을 팔아 이득을 얻으려는 행위는 눈뜨고 보기 민망하다. 정치인이 봉하마을을 찾아 추모하는 행위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인이었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한 정치인을 일반인으로 보면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봉하마을을 둘러싼 환경이 묘해 순수한 추모의 발걸음이 자칫 정치력을 과시하는 거드름으로 비칠 때가 있다. 봉하마을 너럭바위가 집단지성을 모으는 단단한 반석이라고 하면 곤란하지만 그런 개연성이 높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개인이나 집단은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묘수를 쓴다. 우리는 상황과 주변의 관계를 더 낫게 하기 위해 인격이나 지성을 포장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 모두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할 때 이 가면은 바깥으로 드러나는 인격인 `페르소나`로 표현된다. 현재 페르소나를 쓰고 살다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삶을 종 치는 사람은 불행하다. 정치인들이 페르소나를 쓰고 연기를 잘해야 표를 모을 수 있다. 정치인들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의 꿈을 되새기는 행위를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한 포석을 깔았다면 페르소나를 두텁게 하려는 타락한 지성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김해 봉하마을은 큰 인물을 기리는 날이 있어 정신적 해방구 역할을 한다. 한 인물의 뜻을 기리는 날에 많은 사람들이 모을 수 힘은 강제한다고 되지 않는다. 봉하를 중심축에 두고 연결되는 지성의 줄은 아름다운 정신적 소산이다. 거대한 정신을 공유하는 집단이 인류의 진화에서 승리했다. 진화에서 승리를 확인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해도 역사는 주류를 형성한 그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소산인가. 봉하마을에서 퍼지는 강력한 정신 유대가 전국을 뒤덮을 수 있다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정치인들이 봉하를 찾아 노무현 정신으로 무장할 것이다. 순수한 추모의 정신에 `의도`를 하나 더 붙일 수 있다면 봉하를 찾는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경계해야 하는 점은 봉하마을에 드리운 신화의 그림자다. 봉하에는 한 대통령의 정신이 깃들여 있고 동시에 마지막 삶의 아픔이 서려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꾸밈없는 웃음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신화는 자연스레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의도된 계산에서 꾸며지기도 한다. 신화를 만드는 주체는 요행을 바란다. 작은 행운에 기댄 행위가 모여 실제와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시간이 흘러 신화의 옷을 입는다. 나중에 노무현 정신은 없고 신화만 남는다면 봉하는 시민들의 마음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당연히 정치 1번지 자리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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