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재 독서 왕 백곡 김득신
둔재 독서 왕 백곡 김득신
  • 이광수
  • 승인 2021.05.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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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사람의 지능지수(IQ)가 70대인 사람을 둔재라고 부른다. 대개 이런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 자식이 공부로 관직에 입문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해서 출세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포기한다. 그러나 현명한 부모는 남보다 특출한 자녀의 특기나 장기를 잘 살려서 자식의 장래를 성공인생으로 이끈 훌륭한 사례도 수없이 많다. 반면 지능지수가 140인 멘사나, 수재로 고시(행시, 사시, 변시, 외시 등)에 합격한 사람들이 마냥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 고시에 합격한 우수한 인재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법조인과 정치인이 되어 일시에 몰락하는 사례 역시 수없이 봐 왔다. 권력의 시녀가 되어 출세에 눈먼 타락한 천재들이 부지기수인 것을 보면 머리 좋은 게 오히려 불행의 화근이 되기도 한다.

조선 효종 때의 시인 백곡 김득신은 둔재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집안 대대로 문과 대과에 급제해 벼슬한 뼈대 있는 명문가였다. 그러나 김득신은 어제 외운 것은 고사하고 오늘 외운 것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둔재였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가까운 종친들이 가문의 장래가 걱정되어 양자를 두어야 한다고까지 했겠는가. 그의 부친 김치는 동래부사를 거쳐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 중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에게 반드시 대과에 급제해 가문의 대를 이어라고 유언했다.

김득신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당시(唐詩)를 배웠다. 19세가 되어서야 겨우 시 몇 수를 지어 당시 동래부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3년 상을 치르고 절에 들어가 36년 동안 36편의 고문을 외우고 또 외웠다. 그의 공부법은 수없는 반복학습이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38세에 진사시험에 합격해 관로의 길이 열렸다. 나이 47세 때 효종임금은 그의 오언절구 시 ‘용호(龍湖)’를 읽고 극찬했다.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잠기고/가을 산엔 소낙비가 들이 친다/지우는 강에 풍랑이니/어부가 급히 뱃머리를 돌리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환갑을 앞둔 59세에 문과증광시 대과에 급제해 부친의 유훈을 지켰다.

그가 쓴 <독수기(讀數記)>를 읽어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백이전>은 1억1만3천 번을 읽었고, <노자전>, <분왕>, <벽력금>, <능허대기>, <의금장>, <보망장>은 2만 번 이상 읽었다고 한다. 2만 번 미만 읽은 책은 아예 <독수기>에 올리지도 않았다니 그의 엄청난 독서열은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옛날 1억은 10만에 해당하니 <백이전>은 11만 3000천 번이나 읽은 셈이다. 최근 <이기환의 Hi-History>에서 조선의 독서왕 세종대왕과 김득신을 비교한 가사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는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과 둔재 김득신의 독서열을 비교했다. 잘 알다시피 세종대왕은 책벌레로 정평이 난 독서광이었다. 세종은 일단 책을 손에 들었다하면 100회를 반복해서 읽는 것은 기본이었다. <춘추좌전>과 <초사>는 2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독서로 안질이 생기고 아픈 병중이나 수라상을 들 때도 책을 펼쳐놓고 읽는 바람에 부왕 태종이 환관을 시켜 책을 모두 걷어갔다. 실수로 병풍 뒤에 남긴 <극소수간: 구양수와 소식의 편지글>을 11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종은 신하들 앞에서 자신의 독서열을 은근히 과시하기도 했지만 김득신의 독서열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를 기리는 기념물인 충북 괴산의 김득신 누정이름을 <억만재>라고 지었다고 하니 조선의 ‘독서왕’이라고 상찬할 만하다.(지금 명칭은 취묵당). 그의 문집 <백곡집>에 남긴 말이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마라. 재주가 부족하거든 한 가지에 정성을 쏟으라. 이것저것 해서 이름을 얻지 못한 것보다 낫다.’ 책과는 담을 쌓고 사는 독서기피시대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말이다.

비트코인과 주식 대박에 목숨을 거는 20~30 청춘들에게 김득신의 교훈은 허황된 신기루의 미망에서 어서 깨어나라는 죽비소리처럼 들린다. 한방을 노리는 일시적인 성공과 수재들의 잔머리 굴리기는 결코 행복인생의 방정식은 아니다. 둔재 독서 왕 김득신의 충직한 일생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새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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