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14 (금)
배움 행복ㆍ노래 나눔ㆍ통역 봉사… “머뭇거리기엔 인생은 짧아요”
배움 행복ㆍ노래 나눔ㆍ통역 봉사… “머뭇거리기엔 인생은 짧아요”
  • 황원식 기자
  • 승인 2021.05.16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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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람 허출 김해 상동파출소장
허출 김해 상동파출소장이 중국어 회화 연습 삼아 쓴 문장들을 직접 읽어가면서 설명해주고 있다.
허출 김해 상동파출소장이 중국어 회화 연습 삼아 쓴 문장들을 직접 읽어가면서 설명해주고 있다.

50대 들어 외국어 공부 시작

영어ㆍ중국어ㆍ일어 회화 가능

외국인 노동자 통역하며 살펴

“언어로써 사람 잘 이해하고 파”

암 투병 후 생명 소중함 깨달아

농장서 시간 보내며 건강 찾아

봉사활동하며 나누는 행복 강조

내년 정년퇴직을 앞둔 늦은 나이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3개 외국어 회화를 구사해 놀라움을 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 김해시 상동면 허출 파출소장의 회화실력은 이미 지역경찰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다. 특히 그는 외국어 능력을 활용해 지역 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통역을 해주는 등 파출소장으로서 지역을 위한 현장 봉사에도 앞장서고 있다.

상동면에서 처음 만난 그는 선한 눈매에 포근한 웃음으로 맞아줘 경찰로 느껴지기보다는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파출소에 들어서자 한편에 자리한 화이트보드에 직접 중국어 문장들을 쓰면서 유려한 발음을 뽐내기도 했다.

허 소장은 영어, 일본어에 이어 현재는 중국어에 흠뻑 빠져 5급 시험도 준비하고 있다. 교재에는 공부와 관련된 낙서들이 빼곡했다. 허 소장이 직접 만든 한자노트에는 어려운 글자를 쉽게 외울 수 있도록 연상법을 직접 연구해 옮긴 글자도 많았다. 노트에 보인 올곧은 글씨체만큼이나 그의 공부에 대한 진중한 태도와 몰입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는 일 없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생명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하는 허 소장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외국어 공부를 해서 미흡하나마 회화수준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소개했다. 지금도 출퇴근 시간 차안에서 뿐만 아니라 김해 해반천에서 걷기 운동을 하면서도, 심지어 잠자리에서 잠이 들기 전 잠시 동안의 시간도 아까워 회화를 틀어놓고 자는 등 시간활용을 생활화하고 있다.

이렇게 배운 지식은 허 소장 개인의 성취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배우기만 하고 나누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그는 외국인이 늘어나는 김해에서 크고 작은 봉사활동까지 이어가 지역의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지역 내 한 쓰레기폐기업체에 고용된 중국어 노동자들에게 코로나 상황에서 지켜야할 방역수칙을 안내하는 등 통역 봉사를 맡아서 하고 있다.

그가 회화 공부를 한 것은 50대에 접어들면서 부터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냐고 묻자 그는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가 102살인데 그분이 70살 때 왜 외국어 공부를 안 했는지 후회가 된다는 말에 감명을 받았다. 나는 그에 비하면 여유가 많이 있다”며 밝은 모습을 보였다.

허 소장의 공부는 20~30대 젊은이들처럼 취업을 위해서나, 스펙을 쌓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공부하는 ‘그 과정 자체’에서 오는 기쁨도 크다고 한다. “그저 모르는 한자를 알게 되면 그것이 재산이고, 그것이 즐거움이다”며 배움의 기쁨을 말한다. 또한 그의 공부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는 그가 자주 인용하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는 공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배울 것이 있다는 그의 신념이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존경으로도 표현된 것일까.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었다. 허 소장이 공부로써외국어를 선택한 이유도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부터였다. 외사계에서도 오래 근무했던 그는 언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 현재까지도 그때 알던 외국인들과 연락하며 소통하는 모습에서 정감이 느껴졌다.

그의 인생에도 큰 시련이 있었다. 10여 년 전 대장암이 찾아와 생사의 고비를 겪은 것. 그는 부모님들 보다 먼저 가는 불효를 짓지 않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어가며 힘든 시간을 버텼다. 그 마음이 닿았던 것인지 점차 건강을 찾아갔고, 이 과정에서 건강과 인생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게 된 그는 전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삶을 살게 됐다.

허 소장은 그 성정답게 건강에 대한, 특히 암에 대한 정보를 컴퓨터 안에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렇게 모인 글은 100페이지가 넘어 양도 상당하다. 지금도 건강에 대한 여러 정보가 들리면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 기록하고 있다는 그는 그것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기에도 열심이다.

또 다른 그의 즐거움은 건강을 찾기 위해 진례면에 사들인 농장에 주말마다 가서 여러 작물과 동물을 키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는 틈만 나면 농장으로 지인들을 초대해 즐거운 시간과 함께 건강도 나누어주고 있다.

얼마 전 한 방송국의 노래 경연 대회에도 지원했을 정도로 실력자인 그는 이날도 마이크를 꺼내 들어 나훈아의 트로트를 구수하게 뽑아내 귀를 즐겁게 했다. 파출소장으로 있으면서 마을 회관을 찾아 노래 봉사활동도 하는 그는 사람들과 사귀면서 봉사활동 하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의 명함 뒤편에 적힌 “머뭇거리기엔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항상 행복한 마음으로 인생을 즐기십시오”라는 말에 여운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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