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21:59 (화)
분묘기지권과 지료납부의무
분묘기지권과 지료납부의무
  • 김주복
  • 승인 2021.05.12 2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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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복의 법률산책
김주복 변호사
김주복 변호사

따뜻한 봄날, 시외로 나가면 도로 주변에 양지바르고 전망 좋은 야산 곳곳에는 어김없이 분묘들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산야에는 약 1500만 기의 분묘가 있다는 통계이다. 오랜 기간 동안 우리의 정신과 생활을 지배하여 온 유교문화의 흔적인 게다. 특히, 타인의 토지에 허락 없이 분묘를 설치한 경우에는 토지소유자와 분묘설치자 사이에 법률상 분쟁이 종종 생기곤 한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관습법상 특수한 용익물권으로 `분묘기지권`을 인정해 오고 있는데, 당시 분묘를 설치할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대다수의 서민들의 사정과 장묘시설이 현저히 부족한 현실 등을 감안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게다.

분묘기지권이란, 분묘가 비록 다른 사람의 토지 위에 설치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분묘와 주변의 일정 면적의 땅에 대해서는 분묘가 존재하는 한 사용권을 인정해주는 권리를 말한다.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면 토지소유자라도 함부로 분묘를 철거하거나 철거를 요구할 수 없다. 분묘기지권이 성립하는 유형은 크게 3가지인데, ①토지소유자의 허락을 받아 분묘를 설치한 경우(승낙형 분묘기지권), ②자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후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팔면서 분묘 이전에 대해서는 별다른 약정을 하지 않은 경우(양도형 분묘기지권), ③남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하고 20년 동안 평온ㆍ공연하게 점유해 사용한 경우(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 등 이다.

그러나, 최근 장묘문화가 매장보다 화장 비율이 높아지고, 제사 등에 대한 시민의식도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묘기지권은 토지소유자의 소유권 행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주장이 거세지면서, 분묘기지권을 계속 인정해야 하는지 논란이 이어졌다. 그래서, 2001년 1월 13일 장사 등에 관한 법률(약칭, "장사법")이 시행되었고, 이 법률 시행 이후에 설치된 분묘의 경우에는 분묘기지권의 존속기한이 정해지고, 시효취득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장사법은 한 차례 개정을 통해 묘지의 기본 설치기간을 30년으로 정하고 1회에 한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장사법이 시행되면서 대법원의 입장의 변화가 문제가 됐으나, 2017년 1월경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장사법 시행 이전에 남의 땅에 설치된 분묘에 대해서도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이 계속 인정된다`고 판시하였고, 헌법재판소도 2020년 11월경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분묘설치자가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한 경우에 토지사용권을 제한당하는 토지소유자는 분묘설치자에게 지료(地料)라도 청구할 수 있어야 옳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에 관하여 종전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했다면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2017다228007)로써 기존 판례를 변경하여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했더라도 땅 주인이 토지 사용료를 청구하면 청구한 날부터 이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청구할 수 있는 지료의 범위를 제한하여 `토지 소유자가 토지 사용료를 청구한 날로부터` 계산하도록 했다. 이전의 사용료까지 무한정 소급해서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분묘기지권과 같이 관습법으로 인정된 권리의 내용을 확정함에 있어서는, 관습법상 권리의 법적 성질과 이를 인정한 취지, 당사자 사이의 이익형량과 전체 법질서와의 조화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립한 분묘기지권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일정한 범위에서 토지 사용의 대가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분묘기지권의 특수성, 조리와 신의성실의 원칙, 지료증감청구권 등 관련 규정의 근본적인 취지를 종합하면,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토지 소유자가 토지 사용의 대가를 청구하면, 그때부터 지료 지급 의무를 부담한다고 봐야 한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과 관련된 지료에 대하여 그동안 상충되는 대법원 판례들이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로써 일단 정리가 된 점은 환영하고, 이 판결이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인정해 온 관습법의 취지를 존중하고 분묘의 존속과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면서도, 토지 소유자의 일방적 희생을 막고 사유재산권을 존중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해석을 한 것은 타당해 보인다.

향후, 분묘설치자와 토지소유자 간에 지료 지급을 둘러싼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분묘설치 토지를 무상으로 이용해오다가 이제부터는 지료를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현실을 분묘설치자가 수용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적절한 지료를 산출하기 위한 객관적인 기준 마련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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