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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은암<母恩庵>- 자애로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모은암<母恩庵>- 자애로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 도명스님
  • 승인 2021.05.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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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스님 산 사 정 담 (山寺情談)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스님

고대 신화와 종교의 세계에서는 아버지가 없이 탄생하는 역사적 인물들이 종종 있어왔다. 동양에서는 팔괘를 만들었다는 동이족의 태호 복희 씨가 그러하고 서양에서는 예수님 같은 분이 대표적인데 불교 역사에서도 그러한 인물이 여럿 있어왔다. 그리하여 고대인들은 아버지가 없어도 어떤 형태로든 탄생은 가능하지만 엄마 없는 탄생은 불가능하다 여겼으며 생명의 탄생에서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였던 것 같다. 그 영향이 어미와 자식과의 관계를 표현한 `모성본능`이라는 용어와 `어버이 은혜`란 노래인데 어버이라 하지만 실제의 내용은 어머니의 은혜만 말하고 있다.

어미가 자식을 아끼는 모성본능은 짐승들도 인간 못지않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때로는 목숨을 희생하기도 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럼 반대로 자식이 자신을 낳고 길러준 어미를 위한 보은(報恩)을 인간과 짐승은 어떤 식으로 하였을까…

효조(孝鳥)라 불리는 까마귀는 자신을 낳고 키워 준 늙은 어미 까마귀를 위해 먹이를 구해 준다고 하였는데 어머니를 숨기고 살아야 했던 가락국의 김수로왕은 어머니의 은혜를 어떻게 갚았을까?.

김해에서 가장 높은 산인 무척산 중턱의 바위 사이에 터를 잡은 모은암은 김해시 생림면에 속해 있으며 2000년 가야불교 설화가 전해오는 유서 깊은 도량이다. 도량 마당에서 앞을 보면 자그마한 평야와 저 멀리 낙동강이 은은하게 보인다.

뒷산인 무척산의 뜻은 `짝할 것이 없다, 소위 뛰어나 비교할 상대가 없다.`는 뜻의 무척(無隻) 또는 불교에서 의미하는 `집착이 없다`는 뜻의 무착(無着)에서 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모은암의 원래 이름은 모암(母庵)이었다가 근세에 모은암으로 바뀌게 되었다.

창건 유래는 가락 2대 거등왕이 어머니인 허왕후를 그리워하며 절을 지었다는 설과 <숭선전지>에 나오는 대로 수로왕이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한 원당(願堂)으로 지었다는 설의 두 가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설에 무게를 둔다. 모은암 주위는 각종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졌는데 커다란 `링가`같은 남근 바위도 있고 허왕후의 얼굴을 닮았다는 왕후 바위도 있다. 법당 주불은 석조 아미타 여래 좌상이며 법당 뒤 바위굴에는 16나한이 모셔져 있다. 동굴 나한전에는 나한상 사이에 두 개의 링가가 있는데 가야불교 연기사찰에서 종종 보이며 인도의 토착 신앙이 이곳까지 전래된 흔적으로 힌두이즘의 산물로 보기도 한다. 모은암 뒤쪽으로 2~30분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산 정상 가까이에 커다란 호수와 함께 아름다운 분지가 나타나는데 옛 통천사(通天寺) 자리이다.

지금은 개신교의 무척산 기도원으로 바뀌었지만, 옛날에는 통천사라는 모은암의 산 내 암자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는 개신교 목사님과 성도들이 구국기도회를 하면서 터전을 잡아 지금의 기도원이 생기게 된 것이다. 못 위 밭 주변에는 통천사지의 석조물들이 몇 점 드러나 있는데 제대로 된 발굴은 아직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산 정상 아래 아름다운 호수 `천지`(天池)는 일반 산들에서 흔히 보기 드물며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죽음에 얽힌 신비로운 옛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허왕후가 죽고 난 10년 후 수로왕도 서거하고 능묘를 궁궐의 동북쪽 평지에 쓰게 되는데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땅을 파니 물이 솟아 나와서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고 난감해진 신료들이 수소문하여 풍수와 지리에 밝은 도인(道人)을 찾아 묻게 되었다. 도인이 말하길 "무척산과 능묘 자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정상에 못을 파면 물이 그쪽으로 빠져나가 묘를 써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힘을 다하여 연못을 만드니 묫자리의 땅이 말라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반 상식으로 납득이 안가는 이야기나 깊고 오묘한 풍수의 세계를 어찌 다 알겠는가? 보통 물은 아래로 흐른다 하나 꼭 그렇지만 않은 것이 물은 삼투압에 의해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흐르기도 하기에 산 정상 부근에서도 가끔 옹달샘을 만나곤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때 이후 지금까지 아무리 비가 와도 왕릉에는 침수 피해가 나지 않는다 하니 옛 도인의 묘방과 영험이 대단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보면 천지는 기록에 나타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기도 하다.

천지에서 동쪽으로 산을 넘어가면 백운암(白雲庵)이 나오는데 수로왕이 가락국의 중흥을 위해 절을 지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무척산을 배경으로 한 모은암, 백운암, 통천사 세 사찰은 모두가 2000년 가야불교와 인연하고 있으며 그 옛날의 신비로운 이야기를 오늘에까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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