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3:32 (토)
별의 순간도 "식혜에 뜬 밥풀 같은 인기" 입담
별의 순간도 "식혜에 뜬 밥풀 같은 인기" 입담
  • 김중걸 편집위원
  • 승인 2021.04.28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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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

톡톡 튀는 언변에 세계가 들썩

연습으로 이어진 55년 연기 인생
김중걸 편집위원
김중걸 편집위원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의 입담과 어록이 연일 화제다. 그의 톡톡 튀는 언변에 세계가 웃고 놀랐다. 10여 년간의 미국 생활에서 다져진 영어가 빛나는 지점이었다. 미국인처럼 혀를 굴리는 유창하거나 미려한 발음은 아니나 그 언어는 삶의 철학이 묻어난 `촌철살인`이었다. 방송에서도 연일 그의 입담이 회자된다. 뉴욕타임즈(NYT)는 그를 아카데미 사회자로 해야 한다고도 했다.

떨렸다는 말과는 달리 74살의 그는 오히려 씩씩함과 재기발랄, 위트로 시상식을 압도하면서 `쇼를 훔친 사람`으로도 불렸다. 세계적인 배우와 감독 등 영화 관계자들 앞에서 그는 "운이 좋았다"며 "아시아권에서 살면서 서양 TV 프로그램을 많이 봤다. 오늘 직접 이 자리에 오게 되다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영화 `미나리` 제작자 브래트 피트에게 한 조용한 일갈이 압권이다. 그는 "드디어 만나 뵙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저희 영화 찍을 때 어디 계셨냐"며 "정말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적은 예산의 독립영화로 고생을 시킨 제작자에게 소심한(?) 복수였을까? 그의 너스레에 브래트 피트가 움찔했는지는 모른다. 거침없는 그의 입담, 그것도 한국 할머니의 유창한 영어는 미국인들이 영화 `미나리` 관람 중에 느꼈을 1인치(영어자막)의 불편을 잊고 보상까지 받았을 것이다.

윤여정의 입담은 주 LA 한국 총영사관에서 가진 한국 특파원과의 기자회견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굴곡과 역경을 이겨내고 일군 그의 오스카 수상의 영예는 한마디로 `성실함`이었다. 생계형 배우라고 솔직하게 인정했고 자신의 연기철학은 열등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그는 연기가 아닌 국문과를 중퇴했다, 용돈벌이로 지난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에 뽑혀 `장희빈`역과 김기영 감독의 `화녀`에서 주인공 역을 했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대사를 외웠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 처음 그의 연기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연기는 연습으로 다져졌다며 브로드웨이 명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누가 `브로드웨이 가는 길`(How to Get to The Broadway)을 물었는데 돌아온 답은 `연습`(Practice)이었다며 연습을 신념처럼 챙겼다고 한다. 그의 성공은 연습으로 이어진 55년간 연기인생이 일궈냈다.

윤여정은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이 최고의 순간이냐는 질문에는 "최고의 순간은 없겠죠"라며 "나는 최고 그런 말이 참 싫다며 최중(最中)만 되면서 살면 된다"고 밝혔다. 또 혐오와 증오범죄에도 목소리를 내며 "우리 다 동등하게 살면 안돼요?"라고도 했다. 2009년의 입담도 소환됐다. 2009년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종영 직후 윤여정이 진행한 한 여성동아 인터뷰에서도 그런 매력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노희경 작가는 최근 펴낸 수필집에서 "`미친년, 이 자식아`하는 막말조차도 윤여정의 입을 통해 뱉어지면 아픈 위안이 되거나 쓸쓸한 인생에 대한 정의가 된다"고 했다. 실제 윤여정의 모습과 비슷해 대본을 외울 필요 없이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반응도 있기도 하다.

영화 `미나리`에서 외손주에게 까칠하나 속정이 깊은 할머니 연기가 미국인들의 감정을 자극하면서 100년을 넘긴 한국 영화 역사를 새로 쓰게 됐다. 배우 강부자는 "지금 세상이 온통 네 얘기로 휩싸였다고 하니 `언니 그거 식혜에 동동 뜬 밥풀 같은 인기야`라고 했다"며 뜨거운 인기에 대한 윤여정의 반응을 공개했다. 세상을 관조하는 경지와 연륜에서 나온 겸손으로 `기억되기보다는 계속 걸어가겠다`는 삶의 철학이다.

브래드 피트의 냄새를 묻는 외신기자에게 "나는(냄새맡는) 개가 아니다", "오스카 상 탔다고 김여정이 되지 않는다"고 한 그의 당찬 입담은 어록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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