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0:19 (금)
사찰의 창건 이야기-연기 설화
사찰의 창건 이야기-연기 설화
  • 도명 스님
  • 승인 2021.04.26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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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형상들과 이름, 그리고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한다.

또 모든 존재는 절대가 아닌 상대적인 가치를 가지며 대개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은 현실에서의 필요성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스토리에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가치도 그 사람의 소유나 위치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으며, 진정한 가치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역정을 통해 그 사람의 가치관과 철학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느냐로 평가된다고 하겠다.

한편 사찰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인 연기(緣起) 설화는 그 사찰이 어떻게 창건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무형의 역사이며 사찰의 품격까지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옛 가야지역인 김해지역 사찰에는 장유화상과 수로왕, 그리고 허왕후와 관련한 연기담이 여럿 있으며 그것은 사찰과 지역민들이 전승하여 지켜온 소중한 옛이야기들이다.

은하사(銀河寺) -신어(神魚)가 노니는 나한 도량 은하사-는 김해의 주산인 신어산(神魚山)을 병풍으로 삼아 산 중턱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김해 시내와 김해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천하의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가야초기의 연기사찰들을 보면 한결같이 명당에 터를 잡고 있으며 은하사에 와보면 옛 선인들의 풍수에 대한 높은 안목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은하사의 역사는 가야 시대 초기까지 올라가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거의 20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며 한국불교 최초 사찰 중 하나라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은하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처음 이 터에 자리를 잡고 수행하였던 이는 허왕후의 오빠인 인도 아유타국 왕자 출신 스님인 장유화상 이라고 한다.

1970년대 은하사 주지로 부임해 현재의 사격(寺格)을 만든 은하사 회주 대성 큰스님께서는 허황옥 공주 일행의 목숨을 건 2만 여리 항해를 진두지휘하며 이 땅까지 안전하게 인솔한 이가 바로 장유화상 이라고 말하고 있다. 1797년의 <취운루 중수기>에는 "가락국의 공주 허황옥이 천축국(인도)에서 올 때 오빠 장유화상과 함께 왔다. 천축국은 본래 부처의 나라이기에 수로왕이 은하사, 명월사 그리고 작은 암자들을 창건하라고 명하였다"고 전한다. 장유화상이 명산 신어산 중턱에 와서 고향인 인도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서 기도하며 수행한 사찰이 산 서쪽의 서림사(西林寺)이며 이 땅 가락국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기도하며 수행한 사찰이 산 동쪽의 동림사(東林寺)라 한다. 장유화상이 최초 터를 잡고 수행한 터 위에 수로왕이 후원하여 제대로 된 절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서림사는 중간에 이름이 몇 번 변하여 지금의 은하사가 되었다. 처음 서림사에서 소금강사로 바꿨다가 다시 서림사로. 이후 서림사에서 다시 지금의 은하사로 고쳐 불리게 되었다.

사찰 뒷산이 신어산(神魚山)이며 `신령스러운 물고기`란 뜻이 있는데 대웅전 대들보에 머리는 용이고 몸은 물고기인 신어가 한 마리 그려져 있으며 반인반수(伴人伴獸)도 아닌 반룡반어(反龍反魚)로 전국의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유일한 모양이다.

또 신중단 아래에는 쌍어문양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문양은 수로왕릉의 정문에도 있으며 허왕후의 고향인 인도 아유타국의 공식문장과 같은 모양이어서 문화적 동일성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흔적들이다.

가야의 첫 이름인 `가락`의 뜻이 인도 드라비다의 고대어로 물고기라고 하며 가야는 드라비다 현대어로 물고기라 하는데 가락, 가야, 신어산, 신어, 쌍어문양 등은 묘하게 모두가 물고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도 풀어야 할 가야문화 코드 중 하나이다.

대웅전 벽화에는 장유화상과 칠왕자의 스토리가 그려져 있고 대웅전 옆 삼성각에는 장유화상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종각 옆 돌계단에 `신어통천(神魚洞天)`이란 네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김해 무척산 정상의 가야 옛 폐사지 통천사(通天寺)와 밀양 부은사 바위에 새겨진 통천도량(通天道場)과 함께 가야불교 연기사찰에만 있는 특이한 문자 코드이다.

수로왕은 이른바 영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손강림(天孫降臨) 신화`로 탄생했기에 `하늘과 통한다`는 통천(通天)은 천손민족 가야와 연결되는 공통분모로 보기도 한다.

은하사가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산내에 영구암, 지장암을 비롯하여 `팔방구암자`(八方九庵子)를 둘 만큼 사격이 컸었는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44년 인조대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천년의 향훈을 간직한 가야불교 연기사찰 신어산 은하사는 오늘도 세파에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포근한 안식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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