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3:42 (목)
바로! 이사람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출마 윤영석 국회의원
바로! 이사람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출마 윤영석 국회의원
  • 서울 이대형 기자
  • 승인 2021.04.25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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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힘들고 국가 위기 때 어려움 극복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완전히 새로운 비전과 정치 의지를 가진 당 대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완전히 새로운 비전과 정치 의지를 가진 당 대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양산 토박이’서 ‘국민의 일꾼’으로

지역민 목소리 대변하는 초심 지켜

민생경제 회복을 제1의 목표 삼아

내년 3월 9일 대선 정권교체 앞장

디지털 정당 운영방안 등 제시

지난 대선ㆍ2018 지방선거 참패 후

당 수석대변인 맡아 큰 역할 감당

세월호 참사 후엔 원내대변인으로

당 해체위기 때 대표 비서실장으로

주요당직 맡아 당 중심 잡는 데 앞장

수권정당 역량 없으면 집권 어려워

비장한 각오로 정치 혁명 이룰 것
 

윤영석 의원
윤영석 의원

국민의힘 윤영석(양산갑) 의원은 양산군 원동면 출신이다. 양산에서 초ㆍ중학교를 마치고 부산 동인고와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37회)에 합격해 노동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시에서 근무하던 2009년 국제 민간기구인 ‘아시아 도시연맹’을 만들었다. 초대부터 지금까지 이사장을 맡고 있다. 16개국 22개 도시 사람들과 교류하며 매년 ‘아시아 도시포럼’을 열고 국제적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포럼을 통해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국민의 삶이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올바른 정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 2012년 19대 총선에 출마한 뒤 내리 3선에 성공한 점은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근 국민의힘 당 대표 출마에 나선 그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편집자 주>

윤 의원은 ‘양산 토박이’라는 게 가장 강점이다. 그동안 양산에서는 대부분 외지인이 국회의원을 지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위치한 데다 젊은 인구 유입 증가 등으로 진보 정치 색채가 상대적으로 강한 지역에서 보수성향 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는 항상 지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윤 의원은 “국민 삶이 힘든 만큼 민생경제 회복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의정활동에 매진하고 있으며 내년 3월 9일 대선에서 반드시 정권교체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1965년 양산에서 태어난 윤 의원은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초가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2살까지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3대에 걸쳐 13명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부유하지 않았지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고 회고했다. 어린 시절 역사학자의 꿈을 키웠다. 일제시대를 살았던 조부모로부터 일본에 나라를 뺏긴 시대의 얘기를 듣고 강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민족 역사의 위대함을 역사학자로서 고증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학교 도서관의 역사책은 모조리 읽었다. 하지만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위대한 나라를 만드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때부터 ‘국민의 일꾼’을 꿈꿨다고 한다.

윤 의원은 행정고시(37회)에 합격해 노동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노동부를 선택한 데는 아픈 가족사가 있었다. 어려운 시절 윤 의원 누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양산의 한 공장에 취직했다. 직업병을 얻어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윤 의원은 노동부에서 열정을 다해 근로자를 보호하는 업무를 맡았다.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할 때는 고용보험기획 사무관을 맡아 우리나라 고용정책의 뼈대를 세우기도 했다.

이후 서울시에서 혁신가로서 큰 역량을 발휘했다. 세종문화회관을 혁신적으로 개혁한 인물도 윤 의원이었다. 세계적 지휘자인 정명훈 씨를 서울시향에 영입해 개혁하면서 최고의 교향악단으로 발돋움시켰다. 이 사례는 대한민국 행정혁신 브랜드 대상을 받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 MBA 교재에 우수사례로 소개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서울의 인사동길, 삼청동길, 정동길, 대학로 문화거리를 조성했으며, 서울시 마케팅 담당관으로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한류를 알리고 투자와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도 도맡아 했다.

2009년에는 국제 민간기구인 ‘아시아 도시연맹’ 설립을 주도했다. 서울시 등 아시아 22개 도시 관계자들이 아시아 도시간의 교류를 위해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 윤 의원은 초대부터 지금까지 아시아도시연맹 이사장을 맡아 매년 ‘아시아도시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미국(듀크대, 하버드대)과 중국(북경대)에서의 유학생활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을 구상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윤 의원은 자신의 정치 철학과 실천 방향에도 담백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정치인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나라가 어렵고 힘들수록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국민을 풍요롭고 안전하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일편단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윤 의원은 “국민의 삶이 힘든 만큼 국민의 민생 회복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건강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에서 꽃 피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소명을 밝혔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당 대표 출마문제로 이어졌다.

그는 정치에 입문하면서 일찌감치 큰 정치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3선 의원인 그는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 국민의힘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당 대표 도전하게 됐다. 그는 “국민 기대와 수준에 걸맞은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 4차 산업시대의 전개에 부응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현실 정치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의힘은 과거 100만 명이던 당원이 갈수록 줄어 이제는 30만 명 수준에 불과하다. 당원이 정당 정책과 의사결정을 주도해야 하는데 참여가 줄고 있다. 최근 4년여 동안 비대위원장 3명, 현역 국회의원 아닌 당 대표가 2명이었다. 정당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한국 정치의 위기다. 구시대적 사고와 메커니즘으로는 정권을 되찾기 어렵다. 완전히 새로운 비전과 정치 의지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제가 당 대표가 되고자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당의 혁명적 변화를 이끄는 대표가 되겠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한국 정치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다.

이를 위해 디지털 정당 운영방안을 제시했다.

윤 의원은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테크놀로지다.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화, 스마트화가 세계의 정치, 한국의 정치를 바꿀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과 빅데이터는 정당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한국 정치가 세계 정치를 선도해야 한다. 우리나라 디지털 격차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다. 시대변화에 맞는 정치 시스템을 도입하면 비용은 줄이면서 참여는 활성화할 수 있다. 법률 제정이 국회의원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과 일반 당원도 발의해서 과반수 이상 찬성을 얻으면 당론화해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시대가 열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소신파로 분류된다.

“국민의힘은 과거 오랜 집권을 통해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 제1야당 지도자는 문재인 정권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파괴행태에 강력하게 저항해야 한다. 당 대표가 앞장서야 한다. 당원이 당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경제ㆍ사회복지 정책, 국민 분열과 갈등을 통합하는 정책, 저출산 고령화 위기와 남북관계ㆍ외교 안보 등에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이를 제시하지 못하면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 당 대표가 되면 ‘새도우 캐비닛(shadow cabinet. 예비내각)’을 구성해 대안을 제시하겠다. 현재 국민의힘은 원칙이 안 보인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제대로 대응조차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은 시기상조인데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끌려가기만 한다. 수권정당으로서 모습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집권도 어렵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비장감이 감돌았다.

당이 위기 때마다 주요 당직을 맡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도전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이 어렵고 국가 위기 상황 때 어려움을 극복하는 리더로서 역할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 후 당 수석대변인을 맡아 여당에 맞섰다. 세월호 참사 후에는 원내대변인으로 야당과 마주했다. 탄핵 위기로 당 해체 위기 때는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당 중심을 잡는 역할을 했다. 엄청나게 어려운 시기라 솔직하게 내키지 않은 적도 있다. 하지만 동요를 최소화하고 당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어려울 때 당을 위해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돌이켜보면 어려운 시기였지만 나름대로 보람도, 성과도 많았다.

● 윤영석 의원 약력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듀크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석사

-제37회 행정고시

-고용노동부 고용보험과 행정사무관

-서울특별시청 문화정책팀 팀장

-서울특별시청 마케팅담당관

-제19ㆍ20ㆍ21대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위원장

-국민의힘 소상공인살리기 특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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