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1:48 (토)
시골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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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도경
  • 승인 2021.04.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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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 이도경 보험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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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60년대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은 오일 장터에 대한 추억이 있다. 그 시절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장터에서 사고팔았다. 읍, 면 단위의 소도시는 정해진 날짜에 순회해 오일장이 선다. 동네 어른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유일한 나들이라 평소 아끼는 외출복으로 단장한다. 그들은 이곳저곳 장터를 둘러보다가 장터 국밥에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이고, 늘 보던 얼굴이 안 보이면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세상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한다. 산등성이 해가 뉘엿뉘엿 걸릴 때쯤 아쉬운 듯 장터를 떠나 집으로 온다.

나에게도 장터에 얽힌 추억이 있다. 검정 고무신이 유행하던 시절, 검정 고무신은 참으로 질겨서 한 켤레를 사면 1년 정도 신는다. 엄마는 두 딸의 신발도 살 겸 장터로 갔다. 진열된 신발 중에 하얀 고무신이 눈에 들어 왔다. 두 딸에게 하얀 고무신으로 사주고 싶어 했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나니 흰 고무신 두 켤레 사기에는 돈이 충분하지 않았다. 평소에 집안일 돕느라 늘 손이 부르터있는 큰딸은 흰 고무신을 사고 작은딸은 검정 고무신을 샀다.

동생과 나는 시장에서 돌아온 엄마 품에 안긴 보자기를 빼앗듯 급하게 풀었다. 그 안에는 검정 고무신과 흰 고무신이 있었다. 엄마는 동생에게 "다음번에는 흰 고무신 사줄게"라고 미안한 듯 말했다. 검정 고무신을 받아든 동생은 "언니는 옷도 언제나 새 옷이고, 나는 언니 입던 옷 받아 입고, 신발도 언니는 흰 고무신, 나는 검정 고무신, 나도 흰 고무신 신고 싶단 말이야"고 동생은 섭섭해 했다.

속이 상한 동생은 집 앞에 있는 냇가로 갔다. 쪼그리고 앉아 신발을 손에 쥐고 흘러가는 냇물에 올렸다 내렸다 하며 섭섭한 마음을 삭여 보지만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쥐고 있던 신발을 손에서 놓아 버렸다. 동생은 검정 고무신을 흘러가는 냇물에 떠내려 보냈다. 겁도 나고 속도 상했던 동생은 울먹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동생의 빈손을 보면서 "신발은 어쨌노?" 하고 묻자, "물에 떠내려 보냈다" 고 심술 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금방 눈물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동생의 얼굴을 보며 엄마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딸에게 흰 고무신을 사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어찌 없었으랴. 자식을 편애하는 부모는 없다. 성인이 된 동생이 언니에게 들려준 어린 시절 검정 고무신 이야기는 우리 자매의 추억이었다. 생각해보면 동생에게 맏이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도 도심의 변두리에 오일장이 서는 곳이 있다. 업무차 구포시장 근처에 갈 일이 있었다. 마침 그날이 장날이었다. 장터에 검정 고무신과 흰 고무신이 나란히 사이좋게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땐 참 예뻤던 흰 고무신, 장터에 나와 있는 검정 고무신과 흰 고무신을 보자 어릴 적 동생과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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