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0:18 (목)
반성문도 못 쓰게 하는 나라
반성문도 못 쓰게 하는 나라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21.04.21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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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예전 반성문을 쓰던 아이를 보면 애처로웠다. 반성문을 쓰는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지는 상관없고 교육적인 효과는 괜찮다고 여러 사람이 동의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는 게 반성문이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에서 반성문을 쓰게 하는지는 잘 모른다. 반성문을 요구하는 선생에게 인권 침해라고 대드는 학생이 있으면 단순히 "발칙하다" 말하기도 곤란하다. 불가침의 울타리에 싸인 학생 인권을 감히 선생들이 넘어설 수 없는 게 요즘의 정설이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5명이 "관행과 오만에 눈 감지 않고 혁신의 주체가 되겠습니다"라고 반성문을 쓴 후 혼쭐이 났다. 4ㆍ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학교로 치면 어린 학생이 반성문을 발표했으니 선배들이 하찮게 봤을 것이다. 조국 수호를 검찰 개혁으로 몰아간 점, 추미애-윤석열 간 갈등의 문제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대처 등에 대해 반성문을 썼다. 당의 선배들은 반성문을 보고 복잡한 정치 속성을 모르는 하수의 짓거리쯤으로 보는 분위기였다. 당원 게시판과 의원들의 SNS에서는 `초선 5적`으로 규정하고 격한 민주당 지지자들은 "5명의 이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격앙했다. 반성문을 쓰고 비난받는 경직된 정치판에 어린 국회의원의 치부 정도로 보는 게 정답인 것 같다.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 5적이 있고 당을 팔아먹은 초선 5적까지 등장하는 현장에 반성은 없다.

"그해 겨울, 왕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소설 `남한산성`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는 청 군대를 피해 남한산성에 갇혔다. 남한산성 안에서 신하들은 `화친을 해서 살길을 열 것인가`, `싸워서 살길을 열 것인가`를 두고 반성문을 열심히 썼다. 사실 반성문은 당시 중국 대륙의 정세 변화를 읽지 못한 데서부터 출발해야 했다. 외교적 교섭으로 해결하면 될 것을 명나라를 향한 의리를 내세우는 명분론이 굴욕의 역사를 만들었다. 복잡한 국제 정세를 너무 단순화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데 무슨 명분이 필요한가. 그해 겨울 숱한 민초들의 생명은 찬바람에 흩어졌다. 왕이 청 태종을 향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여하튼 통렬한 반성(황제의 은혜를 몰랐던)으로 살길은 열렸다.

반성을 제때 하지 않으면 비난을 받는다. 다시 반성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이를 외면하면 굴욕을 당한다. 정치적 태풍이 불어 닥치기 전에는 전조현상이 있다. 민주당이 이번 4ㆍ7 재보선에서 패배는 이미 예견됐다. 재보선의 마당을 깐 당 소속 시장의 성추행은 재보선에서 참패의 강력한 전조였다. MZ 세대를 돌아서게 한 공정 파괴, 부동산 정책 실패, 편 가르기와 프레임 전쟁 불사 등으로 숱한 전조현상이 두텁게 드러났는데도 재보선에서 이길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했다면 태풍이 올 때 쥐들이 먼저 배를 탈출하는 본능적인 행동을 곱씹어 봐야 한다.

반성문을 빨리 쓰면 굴욕을 당하지 않을수 있다. 반성문을 두고 분열이 일어날 수는 있으나 반성문을 쓴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조직은 강력한 전조 앞에서도 눈을 감고 있다는 증거다. 집권 여당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지난 4ㆍ7 재보선의 재탕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반성문을 쓴 사람이 되레 반성을 해야 하는 이 판에서 앞날을 예견하는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반성문이 좋은 전조로 작용할 수 있었는데 눈을 감으면 굴욕의 멍에를 쓰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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