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22:50 (화)
말(言) 이야기
말(言) 이야기
  • 하태화
  • 승인 2021.04.20 2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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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화 수필가ㆍ사회복지사
하태화 수필가ㆍ사회복지사

어느 방송국의 `신서유기`라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 `훈민정음` 규칙을 적용하는 게임이 있다. 게임 중에 누군가가 영어 단어를 사용하면 그 팀의 점수가 0으로 되돌아가는 규칙이다. 대화 중에 영어가 나오면 안 되니 대화 자체가 부자연스럽기 짝이없다. `우리 팀은` `이번 찬스만 살리면` `선수 체인지` 이 정도는 외래어다. 근래 들어 방송에서는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가 많이 나온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특히 심하다. `그것은 페이크이다` `스킬을 개발해야 한다` `루틴이 있다` `익스트림 하다` 등 익숙지 않은 외국어가 난무한다. 심지어 뉴스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팬더믹` `코호트 격리` 등의 외국어가 나온다. 같은 뜻의 우리말이 있음에도 굳이 외국어로 바꾸어 사용해야만 하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이런 외국어와 함께 신조어, 줄임말, 우리말과 한자어, 영어와 우리말이 섞인 단어들이 등장했다. 젊은 세대와 소통을 하려고 하면 이런 말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소확행` `심쿵` `수포자` `노답` `알바` `영끌` `찐친` `학폭` 등의 단어는 일상생활에 흔히 사용되는 것들이다. 이런 언어 현상을 두고 한글파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 새로운 문화라는 주장도 있다. 사실 우리말의 줄임말보다 외국어의 줄임말이 너무 많다. AI라고 하면 조류 인플루엔자를 의미하는지 인공지능을 의미하는지 구분을 할 수 없다. 북한 핵 폐기 협상에 나왔던 `CVID`, 이것을 보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고 어찌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식으로 `완검되비` 라고 적은 것과 다를 바 없는데, 우리말의 인색함과는 달리 영어 줄임말에는 비판은 커녕 모르면 상식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단어가 가진 본래 의미대로 제대로 쓰인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 적잖이 있다. 대학 입학의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정시는 정해진 기간이 있고 수시는 일정하게 정한 때가 없이 상황에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수시모집이나 정시모집이나 모두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이 경우에는 전기 모집, 후기 모집 혹은 논술 위주, 수능 위주 모집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휴대전화 판매 광고의 `사전판매` `사전 예약`도 이상한 표현이다. `사전판매`라고 하면 판매일 이전에 판매한다는 말인데, 사전 판매일이라 말하는 그 날이 그 휴대전화의 판매 개시일일 뿐이다. `사전 예약` 도 마찬가지다. 미리 약속하는 것이 `예약`인데 `사전 예약일`이 있고 `예약일`이 있어야 하는가. 언제 제품을 인도하겠노라고 접수를 개시하는 날이 그냥 예약일이다.

경남교육청 홈페이지에 가면 `아이 좋아`가 많이 보인다. 감탄사 `아이`와 어린이의 `아이`를 포괄하는 단어로 아주 잘 사용된 듯하다. 하지만 교육자가 학생을 지칭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아이의 상대어는 어른이고, 학생의 상대어는 교사, 교육자이다. 교육현장에서는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므로 `우리 학생들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도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제정하지는 못했지만 도 교육청에서 정력을 쏟았던 조례가 `아이인권조례`이었던가 `학생인권조례`이었던가. 아이와 학생, 어른과 교사를 구별하지 못하면 `사랑의 매`가 `감정의 매`로 바뀌고, 학교에서 학생이 교사를 신고하는 일이 생긴다. 학교복지 얘기가 나올 때 등장하는 `급식소`는 권위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단어다. 급식소는 밥을 주는 곳을 말한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밥을 주는 것일까 아니면 학생들이 학교에서 밥을 먹는 것일까. 누구의 관점에서 사실을 봐야 할까. 밥을 먹는 곳이면 `식당`이다. 학교식당 혹은 학생식당, 교내식당으로 불러야 타당하다고 본다.

말은 조심해야 할 것 중의 하나다. 뱉으면 주워 담지 못하고, 예사로 던진 한마디 말에 상대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말조심에 대한 지혜로운 시조 한 수가 있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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