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4:44 (금)
제왕은 스승과 함께 하고
제왕은 스승과 함께 하고
  • 허성원
  • 승인 2021.04.20 2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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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한 모임에서 은퇴한 정치인 두 분을 만났다. 이분들과 각각 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함께 하며 느낀 분위기는 두 분의 이력만큼이나 확연히 달랐다.

한 분은 대단한 달변가로서 시종 대화를 주도했다. 대화라기보다는 거의 가르침을 들었다. 주로 그분의 과거 무용담, 업적, 인맥 등의 주제에다, 자식들 이야기와 재산의 형성과 같은 사적인 이야기까지 그 분의 삶과 가치관을 폭넓게 파악할 수 있었다. 기억해둘 만한 가르침도 있고 일부 부러운 점도 있었지만, 즐거움보다는 은근히 부담스러운 압박감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분은 호기심이 많았다. 내 일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묻고 진지하게 들으셨다. 워낙 관심을 강하게 표하며 우리 업무를 알고자 하시기에 나는 우리 업계의 대표가 된 듯한 마음으로 기꺼이 많은 말을 하게 되었다. 특히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이름을 여러 번 일부러 읊으며 기억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분의 사적인 정보는 별로 알지 못했지만, 내 이야기를 그토록 진중하게 묻고 들어준 `높은 자리` 출신은 단연 처음이다. 마치 그분과 함께 국가 중대사를 토론한 동반자가 된 듯 귀하게 대접받았다는 뿌듯함과 함께 그분의 묵직한 인격을 가슴에 품고 돌아왔던 기억이 남아있다.

두 분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가르침과 배움에 있는 듯하다. 한 분은 자신의 탁월함을 굳이 증명하면서 무언가 가르침을 주입하려 했다. 반면에 다른 분은 나의 특기를 최대한 드러내게 하여 나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려 애썼다. 한쪽은 나를 아랫사람 혹은 피교육자로 여겼다면, 다른 쪽은 나를 동지나 스승으로 만든 셈이다.

연소왕(燕昭王, BC313~279년 재위)은 제나라의 침공으로 나라가 다 무너진 직후에 연나라의 군주로 즉위하였다.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재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스승인 곽외(郭?)에게 인재를 초빙할 방법을 묻자, 곽외는 다음과 같이 조언하였다.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이야기이다.

"제왕(帝王)은 스승과 함께하고, 왕자(王者)는 벗과 함께하고, 패자(?者) 는 신하와 함께하며, 망국(亡國)의 군주는 종들과 함께합니다." "뜻을 굽혀 남을 섬기고 받들어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자신보다 백배 나은 자가 찾아오고, 앞서 나아가 예를 취하고 나중에 쉬며 먼저 묻고 나중에 말을 삼가면, 자기보다 열 배 나은 자가 찾아옵니다. 남이 나아가 예를 취할 때 나도 나가서 예를 취하면 자기와 비슷한 자가 찾아오며, 높은 자리에 앉아 지팡이를 짚고 노려보면서 일을 시키면 하인들이 찾아오고, 교만하게 눈을 부릅뜨고 마구 때리며 소리 질러 꾸짖으면 종의 무리들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예로부터 들어온 인재가 모여드는 이치입니다. 왕께서 참으로 온 나라의 지혜로운 인재를 널리 뽑으려 하신다면, 그 문하에 먼저 몸을 굽혀 찾아가십시오. 왕께서 그 어진 선비를 모시러 몸을 굽혔다는 것이 천하에 알려진다면, 천하의 선비들이 반드시 연나라로 달려올 것입니다." 남을 섬기고 받들어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리더에게는 어진 선비와 지혜로운 인재가 몰려든다. 그리하여 패자나 왕자를 뛰어넘는 제왕이 될 수 있다. 겸손하기만 하여도 벗이 함께하게 되니, 제왕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왕도를 이룰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가르침은 순자(荀子) 요문편(堯問篇)에도 등장한다."제후가 스승을 얻으면 왕자(王者)가 되고, 벗을 얻으면 패자(覇者)가 되고, 헤아리는 자를 얻으면 유지하고, 홀로 도모하고 자신보다 뛰어난 자가 없으면 망한다." 스승은 멀리 있지 않다. 누구에게나 나보다 나은 점이 있어 반드시 배울 점이 있으니, 가까이 있는 모든 사람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벗 또한 그러하다. 이탁오가 말하였다. "벗이 되지 못하는 스승은 좋은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되지 못하는 벗은 좋은 벗이 될 수 없다." 앞에 언급하였던 그분은 잠시 자리를 함께 한 모든 사람을 자신의 벗이면서 동시에 스승으로 만드는 마력과도 같은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분이었다. 그날도 내가 훨씬 많은 말을 하였지만, 평생 새겨둘 큰 가르침은 오히려 내가 받았다.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 스승이나 벗이 될지는 나의 태도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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