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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마산 4ㆍ3 독립만세 삼진연합대의거의 근원지
창원 마산 4ㆍ3 독립만세 삼진연합대의거의 근원지
  • 이병영 지방자치부 부국장
  • 승인 2021.04.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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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영 지방자치부 부국장
이병영 지방자치부 부국장

창원 마산 삼진면(진전, 진북, 진동)은 4ㆍ3 독립만세 삼진연합대의거의 근원지다.

창원 마산 삼진지역은 4ㆍ3독립만세운동 삼진연합대의거의 근원지(根源地)다. 사람들은 마산삼진을 독립만세운동 삼진연합대의거를 일으킨 애국충절의 고장이라고 말한다.

삼진지역에는 팔의사 창의탑, 이교재 선생의 묘역, 팔의사 애국지사 사당, 팔의사 묘역, 4ㆍ3의거 발상지 진전면 성구사등 4ㆍ3독립만세운동 삼진대의거와 관련된 유적들이 위치해 있어 그 당시 애국지사들의 활동상과 독립운동의 옛 모습들을 떠 올리게 하고 있다.

그럼 여기서 4ㆍ3의거 삼진연합대의거에 대해 간추려 보겠다.

4ㆍ3 삼진의거는 3ㆍ1운동이 한창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1919년 3월 28일과 4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진동, 진북, 진전면 등 3개지역에서 일으킨 연합대 의거다.

4ㆍ3삼진의거는 삼진독립의거라 칭하며, 수원제암리(水原堤岩里)의거, 선천읍(宣川邑)의거, 수안(遂安)의거와 함께 4대의거 중의 하나로 불리우고 있으며, 8명의 사망자와 22명의 부상자를 낸 피비린내 나는 혈전의 대의거로 손꼽히고 있다.

당시 변씨 일족인 변상태의 주도하에 변상헌, 권영대, 권태용, 김수동, 김영종, 구수서, 변상섭, 변상술, 변우범, 변상복, 변종열, 황태익 등이 은밀히 일신재에서 회합해 태극기와 격문 `曰我同胞 有進無退`을 찍어내고, 중앙에서 전해진 독립선언문을 나눠주며, 3개 면에 지령해 의거를 일으켰다.

1919년 4월 3일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 주민들이 연합해 의거한 4ㆍ3의거는 7000여 명이 진동면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본군 헌병대와 혈전을 일으킨 독립의거다.

4월 3일 거사 일에 진전면 양촌 마을 양촌 냇가 둑에 대형 태극기를 내걸었다. 오전 9시부터 모이기 시작한 군중 수가 2000명을 넘었으며 점차 늘어났다.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진동 읍내 장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로 진입했다.

4ㆍ3 삼진연합대의거는 일본군의 무력 진압으로 시위는 끝이 났고, 목숨을 잃은 8명은 김수동, 변갑섭, 변상복, 김영환, 고앙주, 이기봉, 김호현, 홍두익 등이었다.

이후 지난 1963년 10월께 삼진면민들은 순국한 팔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 237번지 고현 마을 입구에 팔의사 창의탑을 세웠다.

창원시는 이 같은 독립운동의 역사적인 재 조명을 위해 4ㆍ3의거 재현행사, 독립만세운동지로 떠나는 역사기행, 독립운동사 책자발간 등을 준비하고 있으며, (가칭)창원시 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임곡리 창원시 애국지사사당 일원에 건립되는 창원시 독립운동기념관은 연면적 2000㎡에 달하며, 오는 2023년 말께 준공예정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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