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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산에 서린 가락국 삼성(三聖) 이야기
명월산에 서린 가락국 삼성(三聖) 이야기
  • 도명 스님
  • 승인 2021.04.12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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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부산시 강서구 허왕후길에 위치한 흥국사 법당 옆에는 비석들이 몇 개 있으며 그 중 1m 정도의 이끼 낀 작은 비석이 1708년 증원 스님이 찬한 <김해명월사사적비>이다.

비문은 수로왕과 허왕후 그리고 장유화상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된 가야불교의 `다빈치 코드`이다. 비문의 내용을 대략하면 "산은 김해부 남쪽 40리에 있는데, 절이 있는 곳은 봉우리를 돌아가면 수풀이 빽빽한 곳인즉, 수로왕이 창건한 바이다. 왕과 허왕후가 서로 이 산에서 만났는데, 높은 산 아래에 `만전`을 설치하고 왕후를 맞이하였으며"~ "왕이 기이하고 신령함에 감동을 하여 산 이름을 명월(明月)이라 짓고, 훗날 절을 세 곳에 세우도록 명한바, 흥ㆍ진ㆍ신 3자를 국자 위에 얹어 편액하여 길이 나라를 위하여 축원하는 장소로 하였다. 新國寺는 세자를 위하여 세운 것으로 산 서쪽 벼랑에 있고, 鎭國寺는 허왕후를 위해 세운 것으로 산 동쪽 골짜기에 있으며, 興國寺는 왕 자신을 위한 것으로 산 가운데 있으니 곧 이 절로서 지금은 삼원당이라 부르는데, 두 절은 다만 옛터만 남았다."

`사적비`에서 보면 당시 명월사는 원래 흥국사였는데 수로왕이 창건하였다고 하고 있다. 또 명월산 아래에서 幔殿을 설치하고 허왕후와 처음 만나 맞이하였다고 하였고 둘이 이 산 아래에서 첫날밤을 치른 후 수로왕은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산 이름을 아름다운 여인 허왕후를 상징하는 `명월`이라 지어 주었다고 한다.

수로왕은 훗날 흥ㆍ진ㆍ신 3자 위에 나라 국(國)자를 붙여서 세자를 위해서는 산 서쪽 벼랑에 신국사를, 허왕후를 위해서는 산 동쪽 골짜기에 진국사를, 그리고 왕 자신을 위해서는 산 중앙에 흥국사를 지었는데 그 흥국사가 바뀌어서 지금의 명월사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 세 절이 1708년 이전에는 수로왕과 허왕후 세자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삼원당(三願堂)으로 불리었고 1708년 당시에는 옛 흥국사인 명월사만 남고, 두 절은 이때 이미 폐사되어 터만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얼마 전 산자락에서 옛 절터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사적비에서는 이렇게 명월사 창건부터 그 당시까지의 과정을 소상히 말하고 있다.

이렇듯 수로왕은 절을 지을 때 가락국 이란 새로운 나라를 위해 新國寺를 강한 나라를 위해 鎭國寺를 잘 사는 나라를 위해 興國寺를 짓고 거기에 세자와 허왕후 수로왕 자신의 존재를 투영했으니 수로왕이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고 가족을 챙겼는지 알 수 있다.

한편 "중수할 때에 기왓장 하나를 무너진 담 아래에서 얻었는데 뒷면에 健康元年 甲申三月藍色 등의 글자가 있어, 또한 장유화상이 西域으로부터 불법을 받들어 옴에 왕이 불도를 중히 여겨 숭불하게 된 것을 다시 증험(證驗)하는 바이다." 또 하나의 눈여겨볼 기록은 중수할 때인 1708년(숙종 34)에 무너진 담 아래에서 나온 기왓장에 `건강원년 갑신삼월람색` 등의 글자가 있는 명문이 발견되었는데, 건강원년은 서기 144년이고 기록대로라면 수로왕 재위 당시에 사찰을 지었다는 사적비 기록과 일치한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세월의 질곡 속에 기왓장은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 유물이 없다고 실증사학 운운하며 선조들의 기록을 덮어놓고 부정하거나 `사찰 측에서 윤색했다` 등의 억지 추측과 검증 안 된 속단은 금물이다.

비석을 쓴 증원 스님도 중수할 때 나온 기와명문을 보고 `아하 이 절의 내려오는 기록과 설화 그대로 수로왕이 지은 게 사실이구나, 그리고 장유화상이 그 때에 불법을 들여왔구나`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찬술한 것이다.

그래서 "장유화상이 서역으로부터 불법을 받들어 옴에 왕이 불도를 중히 여겨 숭불하게 된 것을 다시 증험하는 바이다"라며 `증험`이란 경험적 용어를 명확히 쓰고 있다.

또한 1544년 주세붕의 <장유사 중창기>에서도 장유사의 처음 터를 잡은 이는 풍수 잘 보는 수로왕이고 그 첫 주지(化主)는 월지국의 장유화상으로 사이 좋은 처남 매부지간이었으며 장유화상이 역사속에 실재한 인물임을 확연히 증명하였다.

진해의 용원 앞바다를 바라보는 주포의 명월산은 시집올 때 산령에게 비단바지를 폐백한 허왕후와, 산 이름 지은 수로왕 그리고 해동 초조(初祖) 장유화상의 이야기를 간직한 가락국의 聖山이다. 지난 8일은 오페라 `허왕후`가 김해 문화의 전당에서 장엄한 그 첫 막을 열었다.

드디어 이 천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그녀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그들의 옛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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