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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기산 정신 이어받아 ‘국악 르네상스’ 중심으로 부활한다
산청군, 기산 정신 이어받아 ‘국악 르네상스’ 중심으로 부활한다
  • 김영신 기자
  • 승인 2021.04.12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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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 박헌봉 선생
기산 박헌봉 선생

‘국악계 큰 스승’ 박헌봉 선생 유품 고향 품으로

근대 국악이론 정립 초판 동판ㆍ원본 포함

최종실 명인, 기산국악당 활성화에 전력

토요 상설공연ㆍ국악영재 캠프 등 운영

기산(岐山) 박헌봉 선생(1906~1977). 국악계 큰 스승으로 우리나라 국악 이론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 그의 유품인 ‘창악대강’(唱樂大綱)이 고향인 산청군 단성면 기산국악당으로 돌아왔다.

기산 선생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던 국악과 민속악, 판소리 등 민족음악 부흥을 위해 평생을 바친 국악인이자 학자, 교육인이다.

기산 박헌봉 선생 유품 전달식 후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산 박헌봉 선생 유품 전달식 후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속악 교육을 위한 최초의 사립국악교육기관인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를 설립, 초대 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선생은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이 담긴 창악(판소리)과 관련된 자료를 평생에 걸쳐 수집, 이를 연구하고 정리한 내용을 ‘창악대강’이라는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기산 선생 업적과 그의 생애,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악의 새로운 부흥을 꿈꾸는 산청군의 야심찬 계획을 듣고 살펴봤다.

국악대사전 창악대강 초판 동판.
국악대사전 창악대강 초판 동판.

고향 온 ‘창악대강’ 국악 이론 정수

‘창악대강’은 기산 선생이 평생에 걸쳐 집필한 창악(판소리) 관련 저서다. 창악 기원과 유래, 음조, 발성을 비롯해 오음과 십이율, 근세국악의 발자취 등 창악 이론이 모두 담겨 ‘국악대사전’으로 불린다.

특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춘향가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판소리 다섯마당 가사를 집대성해 국악사적 가치가 높다.

선생은 유명을 달리하기 10여년 전인 지난 1966년 이 책 집필을 완성하고 67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학자로서의 사명은 물론 구술로만 전해진 판소리와 민속악을 비롯해 우리 소리의 학술적 가치를 후배들에게 체계적이고 올바르게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창악대강 글자동판 국풍대진.
창악대강 글자동판 국풍대진.

창악은 우리 민족 정서를 잘 표현한 탓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거의 사라진 처지였다. 광복 이후 서양 문물이 밀고 들어온 탓에 우리 국악은 설 자리를 거의 잃었다.

국악계는 기산 선생의 국악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 없었다면 우리 국악의 명맥이 끊어지거나 지금처럼 잘 보존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실제 선생은 전국을 돌며 명창들 민요와 판소리를 녹음하고 채보했다. 해방 이후 이를 바탕으로 ‘창악대강’을 집필하고 300여 곡에 이르는 민요와 명인ㆍ명창들의 창악 200여 곡을 음반에 담았다.

이는 이후 국악학교 등을 통해 우리 국악과 판소리를 재현하는 기반이 됐다.

‘창악대강’ 초판 원본과 동판 등 기산 선생 유품 20여 점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가 보관해 왔다. 왕기철 교장은 직접 유품을 가지고 기산국악당을 찾아 산청군에 전달했다.

창악대강 그림동판 흥보가도.
창악대강 그림동판 흥보가도.

유품 중에는 ‘창악대강’ 등의 글씨가 쓰여진 동판 외에도 ‘흥보가’의 박타는 장면을 표현한 그림 동판을 비롯해 ‘창악대강’ 원본과 각종 사진자료도 포함됐다.

군은 전달받은 유품과 기존에 보관 중인 모든 유품을 기산국악당 내 기념관에 보관ㆍ전시할 예정이다.

평생 국악 진흥 몸바친 기산 박헌봉

기산 선생을 수식하는 말은 셀 수 없이 많다. 국립극장 운영위원, 한국 국악협회 이사장, 문화재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며 한국 최초로 국악예술학교 부설 학생국악관현악단(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창설했다.

특히, 근대 대한민국 국악 이론을 정립한 학자이자 후학 양성에 온 힘을 다한 국악부흥 활동가로 명망이 높다.

기산 박헌봉 선생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906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생 동안 국악 진흥을 위해 힘쓴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조선음악협회 조선악부에서 민족음악 진흥을 꾀하다가 일제가 ‘춘향전’마저 일어로 공연하라는 압력에 불복, 단체를 해산 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광복이 되자 국악건설본부를 창설했다.

1960년 민속악 교육을 위한 최초의 사립국악교육기관인 국악예술학교를 설립, 초대 교장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 국악협회 이사장,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지내며 국악 이론가이자 교육가로 국악 부흥에 헌신했다.

해방 이후에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창악(판소리) 관련자료를 집대성해 ‘창악대강’을 출간했다.

기산 선생 업적 중 백미는 국악예술고등학교 설립이다. 그는 지난 1960년 ‘국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향사 박귀희 명창 등 많은 국악인들과 함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당시 국악예술고등학교)를 설립했다.

박헌봉 선생을 필두로 박귀희ㆍ김소희 명창 등 수 많은 국악인들이 마음을 합해 설립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는 민간학교인 탓에 당시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 설립은 물론 운영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기산 선생이 고(故) 이병철 삼성회장과 친분이 있는 탓에 학교 운영이 어려울 때마다 매번 이병철 회장을 찾아가 도움을 받았다는 일화도 있다.

기산국악당 대밭극장 공연 박인혜의 판소리 읽어주는 여자.
기산국악당 대밭극장 공연 박인혜의 판소리 읽어주는 여자.

기산국악당으로 국악 부흥 꿈꿔

산청군은 지난 2013년 기산 선생 정신을 기리고 그 뜻을 이어가고자 선생 고향인 단성면 남사예담촌에 기산국악당을 건립했다. 기산국악당은 개관 당시 기산관, 기념관, 교육관 등 전통한옥 양식으로 지은 건물과 옥외공연장을 갖추고 개관, 많은 관심을 끌었다.

기산관과 기념관은 기산 선생 업적, 유품, 집필 서적, 국악기 전시 등 선생 전기와 민속음악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는 국악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을 더하는 한편, 무게 500㎏의 ‘태평고’가 설치된 ‘대고각’이 새로 들어섰다. 기산관 뒤편 대나무 숲 속에 ‘대밭극장’이란 이름의 또 다른 야외공연장도 갖췄다.

현재 ‘코로나19’ 탓에 잠시 중단된 상태지만 군은 지난 2019년부터 기산국악당을 중심으로 다양한 국악공연과 교육 프로그램 유치 등 대한민국 국악 중심지의 성장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산청 기산국악제전 제전위원장 최종실 명인.
산청 기산국악제전 제전위원장 최종실 명인.

군은 기산국악제전위원회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와 협력, 전국의 젊고 재능있는 국악인들을 초청해 ‘토요 상설 국악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특히 지난 2007년부터 ‘산청한방약초축제’ 주요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기산국악제전은 최종실(현 학교법인 국악학원 이사장) 제전위원장이 총감독을 맡아 기산국악당에 상주하며 상설 국악공연의 우수성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최종실 위원장은 기산 선생의 제자로 5세 때 삼천포 농악단에 입문했다. 김덕수, 이광수 등과 함께 ‘사물놀이’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군은 지난 2019년 5월 기산국악당 상설 국악공연에 앞서 ‘기산 박헌봉 선생 추모 음악제’를 열고 기산 소나무 명명식, 추모제례, 대밭 극장 공연 등을 진행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타악연희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주삼천포 12차 농악’을 전수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국악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진주삼천포(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 농악은 지난 1966년 우리나라 최초로 농악부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악이다. 기산 선생은 진주삼천포 농악의 무형문화재 지정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기산국악당은 지난 2009년부터 산청초등학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사물놀이 강습반을, 이어 2017년부터 지역민을 대상으로 가야금 무료 강습반을 운영하고 있다.

가야금 강습반은 지난 2019년부터 초ㆍ중급반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으며 매주 2회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산청아리랑’ 작곡가로 현재 불교음악원 박범훈 원장과 봉은국악합주단 소릿길팀이 기산국악당을 배경으로 ‘봄맞이 비대면 작은 국악콘서트’를 진행,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재근 군수는 “기산 선생이 평생을 통해 이루고자 한 민족예술, 국악 부흥과 계승에 산청군이 앞장서겠다”면서 “산청이 우리 민족의 얼과 기개, 흥과 해학이 담긴 국악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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