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사람 황백현 대표(발해투어)
바로! 이 사람 황백현 대표(발해투어)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1.04.06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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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독도가 삶의 뿌리 내려 외로운 섬에서 벗어나길 고대하죠”

독도에 경제활동이 일어나기 위해 2세대 이상 상주할 수 있도록 해야
대한민국이 실효지배 하는 영토로 세계 각국에 인정받을 수 있어
황백현 발해투어 대표는 “독도의 유인도화를 조속히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황백현 발해투어 대표는 “독도의 유인도화를 조속히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평생 독도 지킴이 노력 매진

독도 명예주민ㆍ유인화운동 대표

대마도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독도 통치사ㆍ대마도 백과 등 발간

독도리ㆍ우편번호 만들고 호적 옮겨

독도 선박해상관광호텔 건립 촉구
 

“우리 땅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울릉독도군’, ‘울릉독도공항’으로 개칭하고 유인도화를 조속히 실현해야 합니다”

한평생 독도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발해투어 황백현 대표(74)는 고령의 나이에도 독도 사랑에는 여전히 진심이다.

지난달 31일 부산시 부산진구 소재 발해투어 부산 사무실에서 만난 황 대표는 독도와 대마도의 역사와 사랑에 진심을 보였다.

사회운동가이기도 한 황 대표는 독도 유인도화 한민족운동 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독도 수토사, 독도 명예주민,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 등 나라땅과 독립운동가 선양에 앞장서고 있는 황 대표는 독도 수호활동과 함께 한국 최초로 ‘대마도’ 연구논문(대마도의 한어학습에 관한 연구)으로 문학박사를 취득한 대마도 전문가다. 오랜 연구를 통해 황 대표는 “독도는 우리 땅이며 대마도는 한국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1996년 日 독도 영유권 주장 분노해 독도 수호 나서

1996년 2월 9일 일본 이께다 외상이 독도를 자기네 땅 다케시마(竹島)라고 주장했다, 크게 분노한 국민은 독도 순례운동을 펼쳤다. 황 대표는 부산시민 418명과 함께 썬플라호를 타고 독도순례에 참여했다. 이렇게 시작된 독도 지킴이 운동은 올해로 25년째를 이어오고 있다.

당시 정당 활동을 하고 있던 황 대표는 독도 순례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직접 여행사를 꾸리기도 했다. 이렇게 설립된 발해투어(1996년 설립)와 극일운동독도순례추진본부(주)(1997년 설립) 두 여행사는 대마도 역사기행과 독도 순례 여행사로 특화돼 운영되고 있다.

대마도 역사 기행을 통해 황 대표는 국내 유일의 대마도 박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맞서 대마도를 집중탐구하게 된다.

그냥 둬도 우리 땅인 독도를 왜 우리끼리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침으로서 세계인들에게 ‘독도가 한일 간 분쟁 지역으로 알려주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역지사지로 대마도는 한국 땅이라는 맞불 작전을 전개했다.

황 대표는 대마도 답사대원 14명과 함께 태극기를 손에 들고 대마도로 향했다. 1997년 7월 30일 부산에서 일본 후쿠시마로 가는 ‘카멜리아 호’ 야간 페리를 타고 일본 하카다 국제항에 도착했다. 일본 국내항 부두로 이동해 쯔꾸시 호를 타고 대마도 이즈하라 항에 도착했다. 부산을 떠난 지 무려 12시간 만에 대마도에 도착한 것이다. 당시로써는 부산-대마도 직항이 없었다.

대마도에 도착한 답사단은 태극기를 높이 들고 이즈하라 시내를 활보하며 “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는 한국 땅”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대마도 곳곳을 둘러보며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신라산ㆍ신사ㆍ마을과 백제시대 비구니 법묘가 건립한 수선사, 조선통신사비, 제조 4ㆍ3사건 추도 공양탑, 장송사에 국보인 ‘초조대장경’ 600권이 보관 중인 사실 등 한국 역사와 관련된 유적ㆍ사적 등을 찾아내 대마도 역사관광지를 개척했다.

한평생 독도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발해투어 황백현 대표가 출간한 도서들.
한평생 독도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발해투어 황백현 대표가 출간한 도서들.
한평생 독도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발해투어 황백현 대표가 출간한 도서들.
한평생 독도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발해투어 황백현 대표가 출간한 도서들.

황 대표는 ‘대마도 백과’(2008년) ‘대마도 통치사’(2016년) ‘대마도 역사기행’(2017년) ‘스토리텔링 대마도’(2020년), ‘독도 통치사’(2021년)을 발간하며 대마도와 독도 알리기에 열정이다.

노동자ㆍ교사ㆍ사회운동가에서 독도지킴이로

사천시 서포면 조도리가 고향인 황 대표는 진주농고를 나와 부산에서 신발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1981년 동아대학교 영어영문학과(야간)를 나와 거제 해성고에서 1년간, 부산 가야고에서 10여 년간 고교 영어교사를 지내다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1992년 제14대~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부산진)에 출마하는 등 사회활동 영역을 정치권으로 확장을 꾀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오히려 정치활동에서 맺은 인연을 독도 사랑 운동으로 연결시켰다.

특정 정당의 지역구 위원장이 독도 답사단을 이끌어 선거법 위반 논란이 불거지자 아예 여행사 등록을 했다. 이렇게 시작된 여행업은 독도 수호와 대마도 역사기행을 하는 장치와 도구로 승화시켰다.

여행사 이름으로 ‘극일운동 독도 순례단 추진본부(주)’로 정해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독도리 신설ㆍ독도 우편번호 만들고 호적 옮겨

1996년 3월 21일 황 대표는 울릉도에서 자비 300만 원으로 유람선을 전세 내어 독도를 방문했다.

당시 독도를 두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국제적인 분쟁 도서 쟁투에서 일본보다 국제법적 준거를 우리가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999년 11월 황 대표 가족 6명은 경남 사천군 본적을 경북 을릉군 도동읍 독도리로 옮겼다. 그러나 1개월 후 호적등본을 확인해보니 ‘독도리’가 아닌 ‘울릉군 도동읍 산67번지’로 표기돼 있었다고 한다.

황 대표는 2000년 1월 3일 정부에 청원을 넣어 같은 해 4월 7일 우리 행정명에 처음으로 ‘독도리’가 등재됐다.

독도 땅값을 책정하도록 해 공시지가가 책정되게도 했으며 대한민국 공부상에 ‘독도광업지적’을 만들고 우편번호가 없던 독도에 ‘우편번호 700-805’를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민간활동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독도 유인도화ㆍ관광호텔 건립… 우리땅 되게 해야

황 대표는 “독도에 경제활동이 일어나도록 하고 상주인구가 2세대 이상 상주할 수 있도록 해야 비로소 독도가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실효지배 하는 영토로 세계 각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며 독도 유인화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독도에는 건축행위가 제한되기 때문에 독도 해상에 ‘선박해상관광호텔’ 건립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독도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어 국민은 물론 세계인에게 독도를 한국 영토임을 각인시키고 우리 국민이 독도 해상에서 관광과 여가활동을 통해 독도를 가까이하고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도 순례를 국민의 5대 의무라고 외치는 황 대표는 ‘대한민국 독도 향우회’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독도 경비대원에게 내의 보내기 운동과 한국 최초로 독서대학을 개설해 학장을 맡고 있다. 부산~대마도 직항선 운항을 대아고속해운에 건의하면서 자비로 해도(海圖)를 구입해 기증했다. 대마도에 무궁화동산 만들기 본부회장, 독도, 대마도 아카데미 초대 회장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부락’을 ‘마을’로 바꾸고 ‘일제만행희생자위령비’ 건립 등 극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는 경남매일신문 CEO 최고위 과정을 수료하는 등 배움에도 열성이다.

“독도를 앞마당처럼 다녀야 한다”는 황 대표의 바람대로 ‘독도 유인도화’가 조속히 실현되고 ‘해상호텔’ 건립 등으로 ‘독도’가 외로운 섬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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