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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대학가의 봄바람이 매서운 이유
지방 대학가의 봄바람이 매서운 이유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21.03.24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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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벚꽃은 단번에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강한 힘이 있다. 우리 지역에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벚꽃 축제는 해마다 봄날 최고의 이벤트다. 올해도 진해군항제는 코로나19가 힘을 쓰는 바람에 취소됐다. 축제는 없어도 벚꽃은 만발한 진해를 찾는 인파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고민이 깊다. 한창 인근 진주ㆍ거제 지역에 코로나19 확산세가 만만찮아 화사한 봄꽃을 즐기려다 애꿎게 감염병을 달고 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상춘객이 와도 달갑지 않은 도내 벚꽃 축제장이 있는가 하며, 학생이 없어 고민하는 대학가는 `벚꽃 엔딩`에 경기를 앓고 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노랫가락에 대학가의 벚꽃은 더 이상 화사하지 않다. 김해 지역 대학에도 벚꽃이 확 달아오르고 있다.

김해지역 대학은 벚꽃 엔딩의 낭만을 즐길 처지가 못 된다. 벚꽃 엔딩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징조가 올해 입학 충원율에서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해지역 대표 대학인 I 대학은 전체 입학생의 20%를 채우지 못했다. 특히 의대ㆍ간호대ㆍ보건의료 관련 학과를 제외한 53% 모집단위가 미달로 나타나 수입금 감소에 따른 재정적 손실도 예상된다. 이 대학의 신입생 모집 실패가 학령인구 감소와 코로나19 확산에 원인이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입학 홍보를 등한시한 외부 홍보 실패와 학교 당국의 무관심, 정책적 지원 부재뿐 아니라 치밀한 맞춤형 입시전략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즘 벚꽃이 자태를 뽐내는 이 대학에 최근 전 입학처장이 입시 실패를 공개 비판하고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W 교수는 현 총장의 첫해 입학처장을 맡아 입학생 충원을 99%까지 끌어올려 올해의 실패에 책임을 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 교수는 지난 1월 18일 수시 이후에도 글을 올려 "정시를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 뻔하다"며 "완벽한 준비를 하지 않은 본부와 총장을 향해 1년 동안 입시에 대한 지원과 총장이 한 일에 대해 구성원들에게 밝히고 성공시킬 자신이 없으면 인제대의 미래를 위해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해 대학 구성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I 대학뿐 아니라 지방대 곳곳에서 봄철에 얼음 깨지는 소리가 나고 있다. 총장이 미달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거나 일부 학과는 폐지되는 사태가 줄을 잇고 있다.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것을 아는 데도 대비하지 못했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무한 경쟁 시대의 칼날이 대학을 비껴갈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하다. 어느 기업이나 단체보다 앞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곳이 대학이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순수하다. 대학이 학문을 닦는 전당이고 미래 직업을 준비하는 마당이 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학생 없는 캠퍼스는 놀이 공원보다도 못하다. 존폐의 기로에 선 대학에서는 총장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총장이 현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만 돌보고 자기 사람만 주위에 두려는 근시안적인 시각을 가졌다면 폭풍 치는 바다에서 선장 노릇을 할 수 없다. 이런 대학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캠퍼스는 봄철 벚꽃 구경하는 사람들만 간혹 발걸음을 할지도 모른다.

I 대학 교수평의회가 때마침 `총장은 올바른 답을 내라`는 성명서를 내놓았다. "총장과 대학본부가 입시 실패를 학령인구의 대폭 감소에 두고 감축안을 군사 작전하듯이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국 일부 사립대 총장이 미충원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는데 총장과 입학홍보처는 무엇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번 대규모 미충원은 마지막 성찰의 시간일지 모른다"고 벚꽃 엔딩의 현실화를 막아야 한다는 충언이 붙어있다.

내년엔 신입생 충원이 더 어려울 게 뻔하다. I 대학이 벚꽃 엔딩의 희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동행하는 대학이 돼야 한다. 4차 산업을 선도하고 다양한 지원을 해 학과를 구조 조정해야 한다. 진로교육, 커리큘럼, 취업이 일치되게 학교정책을 펼쳐야 하고 취업이 강한 대학으로 학생들의 미래를 열어줘야 한다. 입시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진로상담과를 신설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방 대학가에 부는 봄바람은 잊어라. 봄바람 즐기다 학교 지붕이 날아갈지 모른다. 대학 당국의 리더십 부재는 학령 인구 감소에만 대고 애꿎은 삿대질만 하지 말고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위기에 선 대학의 총장은 미래를 세울 올바른 대답을 내놓고 그렇게 못하면 교육 백년대계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벚나무 아래에 던져야 한다. 대학 구성원 모두가 벚꽃 엔딩의 순서를 기다리는 것보다 백배 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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