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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이직` 표현의 자유일까 범죄일까
`꼬우면 이직` 표현의 자유일까 범죄일까
  • 김용구 사회부 차장
  • 승인 2021.03.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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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구 사회부 차장
김용구 사회부 차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인터넷 익명성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지난 10일 LH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이번 사태와 관련, 비속어가 섞인 국민 조롱 글이 올라오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신경도 안 씀"이라는 제목의 글은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서 물 흐르듯 지나가겠지",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련다", "공부 못해서 못 와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 극혐(극히 혐오스러움)"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자극적인 글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LH 비판으로 들끓는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격분한 국민들은 작성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했고 급기야 LH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대단히 안타깝고 죄송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또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해당 직원을 경찰에 고발했다.

앞서 지난 1월 KBS 직원으로 추정되는 작성자가 "밖에서 욕하지 말고, 능력 되고 기회 되면 우리 사우님 돼라"는 글을 올려 사측이 사과하기도 했다.

이처럼 익명성에 기댄 글 하나가 전체 회사 이미지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자 기업들이 `블라인드`를 경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블라인드` 가입 시 회사 메일계정 이용을 차단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기업 인사ㆍ홍보팀을 활용해 블라인드 게시판을 모니터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LH 추정 직원처럼 경찰 조사로 이어지는 사례도 생기자 커뮤니티 이용자도 스스로 자제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찰 수사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명예훼손과 모욕, 업무방해 등 혐의는 시시비비를 따져 처벌해야 마땅하지만 `블라인드`를 통한 작성자 색출 작업이 직장 `갑질` 폭로 등 익명성을 담보로 한 순기능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블라인드는 조직문화를 공유하고 여러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면서 직장인들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해왔다.

반면 `익명성`에 기대 타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사례를 막으려면 인터넷 실명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잇따랐다. 그러나 실명제 도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앞서 인터넷 도입 초기인 2000년대 익명성과 악플 등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실명제가 이슈로 떠올랐고, 지난 2007년 포털 사이트 이용 등에 실명 확인을 의무화하는 제도가 시행됐지만 2012년 8월 위헌 결정으로 본인 확인 절차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익명성에 숨어 상대를 비방하는 범죄 행위를 손 놓고 마냥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부작용을 줄이려는 다각적인 노력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공적인 제재에 집중하기보다 교육과 지도가 선행돼야 한다.

익명성을 활용한 범죄는 탈억제라는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인지시키고 억제력을 기르는 교육이 절실하다. 이처럼 미디어 교육을 필두로 윤리 의식을 강화하고 법ㆍ기술을 조화롭게 정비할 때 큰 부작용 없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선진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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