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0:51 (목)
바로! 이 사람 방덕우 회장(한국4-H본부) “장학재단 설립해 청소년 꿈ㆍ희망 갖고 미래 그리게 도와야죠”
바로! 이 사람 방덕우 회장(한국4-H본부) “장학재단 설립해 청소년 꿈ㆍ희망 갖고 미래 그리게 도와야죠”
  • 서울 이대형 기자
  • 승인 2021.03.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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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덕우 제26대 한국4-H본부 회장은 “농업의 가치와 비전을 인식하고 농생명 분야로 진로에 관심을 갖도록 미래 인재 육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방덕우 제26대 한국4-H본부 회장은 “농업의 가치와 비전을 인식하고 농생명 분야로 진로에 관심을 갖도록 미래 인재 육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추진력ㆍ리더십 두루 겸비

초등생~39세 성장 도와

기부자들 자부심 줄 것

본부 운영 기업 마인드 접목

농촌 고령화ㆍ지방소멸 극복

인재 청년ㆍ학생 적극 육성

강동구 회관 새단장 추진

“목표가 정해지면 앞도 뒤도 안 보고 그대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지난 2월 25일 한국4-H본부 정기총회에서 대구4-H본부 방덕우 회장이 제26대 한국4-H본부 회장으로 선출됐다. 저돌적인 추진력과 탁월한 리더십을 겸비했다는 방 회장을 한국4-H본부 회관에서 만났다.

나폴레옹의 ‘내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열정이 대단하다 “취임후 어제 하루 처음으로 쉬었다”란 방 회장은 “일요일도 없이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 덕분에 첫 성과도 거뒀다고 한다. “의미있는 분이 후원금 1000만 원을 기탁했다. 4H 본부는 데모하는 단체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인재를 키우는 교육기관이다. 정책적 뒷받침을 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미소를 품었다.

방 회장은 하루 주요 일과는 후원자 모집에서 시작한다. 그는 “많은 지인들에게 후원을 요청하고 있다. 청년농어민도 살릴 수 있지만 초등학생에서 39세 젊은이들이 정신적으로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활동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자연스레 후원금 금액은 중요치 않다. 한 달에 5000원에서 1만 원이라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하다. 최소 1000명의 후원자를 참여시키려고 한다. 5000원을 1000명이 참여하면 한 달에 500만 원이나 된다. 이를 위해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불어넣어 기부문화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러면서 ‘변화’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방 회장은 “임기기간 4-H 본부를 (주)삼성처럼 주식회사 같은 기관으로 토대를 마련하고 싶다. 이는 시ㆍ군 본부가 살면 시ㆍ도 본부가 산다. 그러면 중앙 본부도 산다. 이를 위해서는 변화에 순응해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4-H본부 운영에 기업마인드를 접목시키겠다는 구상이 숨어있었다.

방 회장은 “나는 경제인으로서는 정주영 회장을 제일 좋아한다. ‘하면 된다’는 말이다, 또 이건희 회장의 ‘처자식 말고 다 바꿔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4-H 본부도 그렇게 운영하려고 한다. 지도자들의 변화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90년대 자신이 기업을 일궜던 그의 인생을 함축하는 것 같다.

방 회장은 1955년 대구 달성군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0대 중반 달성군 유가면 와운4-H 본부와 첫 인연을 맺었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 1981년 새마을청소년회중앙연합회 결성에 핵심역할을 했다. “내가 있는 집에서 태어나서 여유가 좀 있었다. 항상 가면 내가 쏘는 형태였고 한평생을 베풀고 사는 스타일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때부터 저돌적 추진력이 돋보인다는 말이 주변인들로부터 흘러나왔다.

이런 방 회장에게 4-H 본부와 작별하는 순간도 있었다.

30대 청년이던 방 회장은 4-H 본부 활동을 잠시 접고 1990대 창녕에서 ‘황제포크’라는 큰 공장을 운영했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전국의 수십만 마리 돼지들이 모두 매립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물론 모든 돼지를 키우는 농가들이 발만 동동 굴렸다. 순간 방 회장 뇌리에 강렬한 그 무언가가 박혔다. 시선을 해외로 돌린 것이다. 그러자 곧바로 위기가 기회로 찾아왔다.

방 회장은 “당시 우리나라는 삼겹살과 목살은 매우 선호하지만 뒷다리살은 잘 먹지 않았다. 냉동 보관해도 유통기한이 6개월에 불과했다. 하지만 동남아 등 해외 수출길을 열어 모두 수출했다”고 일화를 공개했다. 방 회장은 그 성과를 인정받아 산업수출탑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2000년 100만불, 2001년 300만불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농수산물이 100만불을 수출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요즘으로 볼 때 1000만불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방 회장은 이 일을 계기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다.

전량 폐기 처분해야 했던 구제역 사태를 수출의 길을 열어 외화벌이에 성공하자 정부에서 ‘농수산물홈쇼핑TV’를 개국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농수산홈쇼핑TV를 만들 때 특별하게 기여했다. 그때 당시 개인 돈 3억 원이 들어갔지만 인센티브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방 회장의 4-H 본부 회장 출마는 우연치 않게 이뤄졌다.

그는 “사실 이번 회장 출마는 후배가 하려고 준비하다가 중간과정에서 못 나오게 됐다. 저를 두 번이나 찾아와서 부탁하더라.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들어와서 보니까 안 들어와서는 안 되는 시기였던 것 같다. 운명인 거 같다”며 “지난 1월 17일 출마를 선언하고 정말 열심히 뛰었다. 한 달 동안 부지런히 전국 투어를 실시해 겨우 11표 차이로 이겼다”고 회상했다.

회장에 당선된 뒤 방 회장의 각오는 남달랐다.

무엇보다 4-H 본부 위상강화에 방점을 뒀다. 농촌진흥청에 속했던 4-H 본부는 1980년도 5공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넘어갔다. 이후 독립해 한국4-H 본부로 운영되고 있지만 사람들의 뇌리속에서 그 이름이 희미해졌다.

방 회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4-H가 없어진 걸로 생각한다. 다시 4-H 본부를 알리는 운동이 시급해 우리나라 유명 영화배우와 방송인, 언론 등 섭외 중이다. 초록재단의 최불암 씨와 키다리아저씨로 유명한 서수남 씨도 만나 홍보위원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말했다.

방 회장은 본부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남다르다.

직원들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출장을 권유한다. “(직원들에게) 출장을 가기 전에 그 지역 현안을 완전히 파악해 처방전을 들고 가라고 지시한다. 현장에서 답을 찾아라. 전국 160개 시ㆍ군 본부가 원활하게 움직여 준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있게 된다”는 게 방 회장의 설명이다. 현장에서의 해결책 찾기는 시ㆍ군 활성화가 급선무인 4-H 본부의 우선 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방 회장은 “회장을 비롯해 9명의 직원들이 한 달 일할 것을 일주일 안에 하고, 1년에 일할 것을 3개월 안에 끝내야 한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방 회장은 향후 한국4-H본부 운동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 4-H본부의 자립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장학재단을 설립해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겠다. 특히 묵묵히 농업과 농촌을 지키는 청년농업인들의 대다수는 4-H회원이다. 농촌 고령화와 지방 소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청년농업인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우리 농업을 이끌어갈 핵심 인재인 청년4-H뿐만 아니라 초ㆍ중ㆍ고 학생4-H와 대학4-H 회원들이 농업의 가치와 비전을 인식하고 농생명 분야로 진로에 관심을 갖도록 미래 인재 육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경남에서도 177개 조직에 7795명의 회원들이 활동 중에 있다.

끝으로 방 회장은 임기 기간 내 현재 서울 강동구 동남로 73길 31의 본부 회관을 지상 18층, 지하 7층 규모의 신 회관 건립 의지를 다지고 있다. 평생 4-H 활동을 걸어온 마지막 여정의 결과물인 듯했다.

한국 4-H 중앙연합회 사무실.
한국 4-H 중앙연합회 사무실.

ㆍ방덕우 회장은

대구 달성군 출신인 방덕우(만 65세) 회장은 대구 달성군4-H연합회 회장, 경상북도4-H연합회 회장, 대구광역시4-H본부 회장을 맡고 있다. 세계프로태권도연맹 부총재, 아시안게임 비치발리볼 국가대표선수단장 등을 역임했다. 방 회장의 임기는 2021년 3월 1일부터 2024년 2월 말까지 3년이다.

ㆍ한국4-H본부 운영은 어떻게 되나

한국4-H운동은 ‘한국4에이치활동지원법’에 근거해 공공부문(정부기관)과 민간기구(4-H본부) 간 민ㆍ관협력체계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공공부문은 농촌진흥청-도농업기술원-시군농업기술센터로 연계되는 조직을 갖추고 있고, 민간기구는 중앙조직인 한국4-H본부를 중심으로 17개 시ㆍ도4-H본부, 160여 개 시ㆍ군4-H본부로 구성돼 있다. 4-H는 평생교육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어 유소년, 청소년, 대학, 청년농업인, 성인지도자에 이르기까지 4-H가 지향하는 가치에 뜻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만 7세부터 누구나 가입해 활동할 수 있다. 초ㆍ중ㆍ고교 학생, 대학생, 청년농업인, 자원지도자, 지도교사, 후원자 등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4-H활동을 거쳤던 이들은 450여만 명에 이른다. 한국4-H본부는 2007년 제정한 ‘한국4에이치활동지원법’에 따르면 명석한 머리(head)ㆍ충성스러운 마음(heart)ㆍ부지런한 손(hand)ㆍ건강한 몸(health)의 뜻을 지닌 영어의 네 단어의 머리글자를 나타낸다. 지난해 7월 1일 지면으로 발행해온 한국4-H신문을 확장해 ‘4-H인터넷신문’(www.4hnews.kr)을 창간해 PC와 모바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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