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23:33 (수)
반쪽 얼굴
반쪽 얼굴
  • 이도경
  • 승인 2021.03.14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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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 이도경 보험법인 대표
이도경 보험법인 대표

겨우내 품었던 냉기를 씻어내는 봄비에, 봄은 산등성이를 거스르고 개울을 건너, 시골집 대문 앞에 섰다. 조금은 망설여지는 듯, 울타리 너머로 개나리는 꽃눈을 비비고, 목련은 품고 있던 꽃망울의 겉옷을 살포시 들쳐본다.

작년에 다녀간 봄이나 지금 오고 있는 봄이나 같은 봄이지만 같은 봄이 아니다. 지난 2019년 11월 코로나19가 시작될 때 잠깐이면 지나가리라 여겼지만, 1년을 훌쩍 넘긴 긴 시간까지 얼굴을 마스크 속에 가두고 살아가고 있다.

석 장의 마스크 구입을 위해 약국 앞에서 몇 겹의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고, 몇백 원 하던 마스크 한 장을 3000원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했다. 마스크를 처음 쓰고 갑갑해 할 때, 이토록 오래 쓴다고 생각했다면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았을 것이다. 곧 벗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시간을 잊고 지금껏 쓰고 지낸다.

겨울을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한줄기 스쳐 가는 비처럼 코로나도 우리 곁을 떠날 거라며 봄을 기다렸고, 희망을 품고 기다린 그 봄을 두 번째 맞이하고 있다.

사람은 대화를 나눌 때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표정도 읽으면서 감정을 주고받는다. 지금은 상대의 눈과 이마만 보고 산다. 출근길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지인을 만났다. 상대는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는 그 사람을 누구인지를 알아 볼 수 없었다. 인사에 답은 했으나 몰라봐서 미안했다. 마스크 덕분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무분별한 환경 파괴, 특히 건강에 좋다고 하면 검증되지도 않은 혐오감을 주는 음식까지 먹으니, 인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자연은 받은 것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려 주고 있다. 우리 세대에 받지 않더라도 후세대에 돌려줄 것이다.

삶의 필요한 모든 것을 대여해 주는 지구에서 인간은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다. 자유 속에 방종이 숨어있다. 이대로 자연을 훼손시키면 마시고 있는 산소도 어느 날 가격을 지불해야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생수를 사 먹듯이 공기도 사 먹어야 될 날이 오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될 때이다.

사무실 정수기 앞에서 종이컵으로 물을 받으려다 멈칫 했다. 꼭 이 종이컵이라야 되나? 나에게 되묻는다. 다시 자리로 가서 책상 위에 비치된 나의 컵을 들고 왔다. 양칫물을 사용할 때 그냥 틀어놓고 흘려보내던 양치 컵 물 한잔도 이제 아끼고 있다. 5000만 명이 물 한잔을 절약하면 5000만 컵이 된다. 한사람으로 볼 때는 미미하지만 전체의 국민이 실천 할 때는 그 양이 결코 작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것이 환경오염과 연결 돼있다.

우리는 위기가 있을 때마다 지혜를 발휘해 무슨 일이든 잘 대처해왔다. 국민 모두의 마스크 착용률이 세계 최고다. 가장 먼저 마스크를 벗는 나라도 우리나라였으면 좋겠다.

보고 싶다. 코로나의 일상으로 미소를 잃어버린 정겹게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이 보고 싶고, 친구끼리 모여 하얀 이를 드러내며 깔깔 소리 내어 웃고 있는 얼굴도 보고 싶다.

조만간 곧 그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반쪽 얼굴이 아닌 온전한 표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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