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1:13 (금)
봄바람을 막아서는 사람들
봄바람을 막아서는 사람들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21.03.09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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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올해 봄은 땅에서 돈을

뽑아내려는 자들의

약삭빠른 행동과 벚꽃이

빨리 피는 지역의 대학

`망교(亡校)의 노래`로 인해 우울하다

봄바람이 불면 땅에서 생명이 솟아난다. 올봄은 땅에서 돈이 돋아나기를 기대한 무수한 사람들의 바람 때문에 또 다른 무수한 사람들이 허망한 봄볕을 쐬고 있다. 우리나라가 부동산 공화국이란 호화로운 이름을 단지는 오래됐지만, 갈수록 부동산공화국이 더 굳건해지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시흥ㆍ광명 신도시 예정지 및 주변의 땅을 사 치부하려는 계획은 생각할수록 괘심하다. 공기업에 다니면서 꽤나 많은 월급을 받아 어느 직장인보다 호주머니가 두둑했을 텐데, 말 그래도 `토지`주택공사에 다니는 `백`으로 정보를 빼돌려 돈이 되는 토지에투자를 해놓고 속으로 얼마나 통쾌해했을까.

대통령이 LH 직원 투기 의혹에 대해 발본색원을 지시하고 부총리는 무관용을 계속해서 소리 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나서 수사를 못해서 행여 땅땅거리면 살겠다는 그들의 드러나지 않은 야심이 땅속에 묻힐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수사권 조정을 하고 검찰 개혁을 한다고 그렇게 들쑤셔 놓더니 이 모든 결과로 LH 직원이 특혜를 누린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 아파할까. 부동산 불패 신화를 써 내려온 우리나라에서 반대로 땅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올봄에 나쁜 사람들이 벚꽃 아래서 축배를 들지 않도록 `귀하신` LH 직원들을 밝혀내고 그 윗선까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엮어 올려야 한다.

땅에서 돈을 캐려는 사람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면서 또 다른 한 곳이 우리를 침울한 터널로 내몬다. 지방 대학가에 학생들의 부산한 소리가 확 줄었다. 지방 국ㆍ공립대학마저 신입생을 다 채우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김상호 대구대 총장이 올해 입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고 발표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대학에 희망이 없다면 우리 사회가 희망이 없다는 얘기다. 학령인구의 감소가 부른 참사지만 대학 자체의 자구노력을 했는지도 강하게 물어야 한다. 대학이 오는 학생을 받아 교육시키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이 대학이 자기 무덤을 판 꼴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어나야 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은 저주가 아니고 현실이다. 경쟁력 없는 대학이 문을 닫는 일이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것이다.

한 대학의 총장 사퇴까지 부른 신입생 충원난은 앞으로 회복되기가 쉽지 않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올해 성적이 너무 저조하다. 총장이 책임을 지고 자리까지 내놓았다는 이야기는 곪은 부분을 도려낸다고 상처가 아물 정도는 아니라는 방증이다. 도내 일부 대학은 충격적인 신입생 충원율을 보였다. 80%를 겨우 채운 대학도 있다. 이런 충원율이면 내년은 더욱 위태롭다. 학생이 찾지 않은 대학은 건물만 대학이다. 스르르 가라앉는 대학을 바라보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에는 `벚꽃 엔딩`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학의 경쟁력은 도시의 경쟁력이다. 명품 대학이 명품 도시를 만든다. 올해 충격적인 성적을 낸 대학 책임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어려울수록 대학 경영에 혼신을 바칠 책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벚꽃이 빨리 피기로는 경남이 앞줄에 있다. 더군다나 진해군항제는 전국 최고의 봄 축제다. 벚꽃 비가 내리는 진해 거리를 걷는 추억은 해마다 신선하다. 올해 봄은 땅에서 돈을 뽑아내려는 자들의 약삭빠른 행동과 벚꽃이 빨리 피는 지역의 대학에 `망교(亡校)의 노래`로 인해 우울하다. 마침 코로나19의 등살에 진해군항제가 일찍이 취소됐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말을 읊조리며 올해 벚꽃이 피지 말기를 바라는 철없는 생각을 먹기도 한다. 지금 봄바람은 땅 투기 `선수들`이 일어나고 대학 총장은 `선수들`이 없어 자리를 떠나는 사태에 따뜻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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