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1:09 (금)
나쁜 사마리아인들
나쁜 사마리아인들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21.03.04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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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학폭을 저지른 `그 놈`들이

생각하는 수십 배의 괴로움

피해자는 안고 산다.

나쁜 사마리아인의 법에서는

도덕적인 반성이 우선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차고 넘쳤던 모양이다. 분명 옛날이야기다. 과거 학교 폭력의 파워를 가졌던 얼굴들이 온라인을 통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보다 나쁜 사마리아인이 더 이슈가 되는 건 당연한 일. 미소 띤 얼굴 밑층에 깔린 과거 얼굴에 악마의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밥맛이 떨어진다. 철없던 시절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피해자의 파르르 떨리는 호흡이 너무 애처롭다. 오랜 세월에 덮여야 할 악몽이 지금도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박혀있다고 생각하면 애처로움을 넘어 절망에 이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당시 가진 자로서 목을 곧추세우고, 말로 피해자의 가슴에 못을 박고 손과 발로 생명을 흔들었다. 이런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과거를 망각에 숨겨두고 숱한 피해자의 영혼을 지금까지 음침한 골짜기에 가둬두고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공존을 모른다. 남을 짓밟고 지배하려 한다. 힘을 가지고 약한 자를 몰아세우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인류가 벌인 사악한 행위가 인류사의 굵직한 흐름을 새긴 것처럼 개인이 벌인 사악한 행위는 개인사에 커다란 상처를 새겼다. 학폭의 심대한 타격을 입은 개인은 회복 불가능한 아픔에 허우적대다 삶의 절반쯤을 포기한 채 살지도 모른다. 한 개인이나 단체가 어떤 특권이 있어서 다른 개인을 이토록 황폐한 구덩이로 몰아세울 수 있단 말인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그 당시 환경의 지배자가 돼 악의 보편성을 믿고 날뛰었을지 모르나 피해자에게는 너무 가혹한 시간이었다.

인류가 저지른 사악한 행위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승자가 쓴 역사는 사악한 행위가 미화돼 역사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이는 것이고,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되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의 사악한 행위로 학폭의 피해자가 그 당시 거들먹거리며 온갖 추악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그 놈`이 온화한 미소로 TV 드라마에 주연으로 등장하고 배구 코트에서 강 스파이크를 꽂고, 축구 그라운드에서 중거리 슛을 때리는 모습을 보면 피해자는 과거의 아픔이 현재에 다시 살아날 수밖에 없다. 과거가 현재에 나와서 괴롭히는 개인 역사의 연결을 끊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사죄가 필요하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참회를 받고 개인의 역사를 제자리에 놓을 수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임시 치료를 한 후 병원에 까지 옮겨준다. 자신의 돈을 병원비로 치르고 부족한 치료비는 볼일을 본 후 돌아오는 길에 다시 갚겠다고 한다. 초주검이 된 같은 사람을 보고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못 본 체 하고 돌아갔다. 냉대를 받던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서 이웃을 구했다. 우리의 진정한 이웃은 선한 사마리아인이다. 성경에서 따온 이야기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드물지만 요즘 학폭을 통해 등장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은 너무 많다. 이들은 당시 이웃을 무참하게 짓밟고 심지어 돈을 빼앗았다. 선한 사마리아인에겐 이웃이 있어도 나쁜 사마리아인에게는 이웃이 없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이 없는데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지 않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 6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구호자보호법)이 개정돼 선한 사마리아법이 도입됐다. 프로야구 전 롯데 선수인 임수혁이 경기 중에 쓰러졌는데 트레이너나 선수들이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고 응급차를 기다려 임 선수가 식물인간이 됐다. 그때 신속하게 대처를 했다면 임 선수는 그런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의 잣대를 엄격하게 대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없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두고 도덕적인 의무를 피해 가는 건 차치하고 이웃을 아무런 이유 없이 곤경에 빠트리는 사람을 `나쁜 사마리아인의 법`을 갖다 대는 게 우선이다.

학교폭력을 휘두른 학생을 처벌할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 연령에 따라 처분이 다르고, 오랜 과거의 행위를 처벌하려는 공소시효가 문제가 될 뿐이다. 범죄의 피해자는 어떤 경우에도 억울하고 피해의 경중에 따라 오랫동안 삶이 갉히고 괴롭힘을 당한다. 학폭을 저지른 `그 놈`들이 생각하는 수십 배의 괴로움을 피해자는 안고 산다. 나쁜 사마리아인의 법에서는 도덕적인 반성이 우선해야 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통회해야 한다. 피해자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한다. 당신들은 피해자에게 숱한 불면의 밤을 줬고 인생의 벼랑에 몰아세우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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