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1:51 (금)
우리민족의 이야기꾼 일연스님
우리민족의 이야기꾼 일연스님
  • 도명스님
  • 승인 2021.02.22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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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고려의 국사인 일연스님은 그가 태어나기 백여 년 전부터 스님이 살았던 당대까지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파란만장한 격동의 시대였다.

무신정권의 혼란기와 만적의 난, 묘청의 난, 망이 망소이를 비롯한 민초들의 난까지 일어나 고려의 신분사회 전체가 요동치던 시기였고 그가 태어난 이후는 몽고의 침입으로 인하여 국토는 유린되고 백성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하던 시기였다.

출가한 수행자로서 그는 자신의 해탈이 매우 절실했지만 나라와 백성들의 현실은 참담했기에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진리를 향한 구도의 마음만큼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고자 했던 대자비가 있었다.

스님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윈 흙수저 출신인지라 일반 서민들의 현실을 잘 공감할 수 있었으므로 젊은 시절부터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역사의 현장은 되도록 직접 발로 찾아가 채록하여 쓴 것이 삼국유사의 기록들이다.

그리보면 스님은 학자이면서도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간 실천가이기도 하다.

스님은 국사의 지위에 오르기 전까지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민초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였기에 귀천의 계급을 뛰어넘는 인간 평등을 삼국유사 속에 남겨놓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붓다의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이라는 인간존엄의 수평적 가치관이 영향을 주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한편 일각에서는 일연스님이 승려 신분이라 해서 모든 것을 불교에 유리하도록 윤색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일연스님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커다란 실례의 말이다.

흔히 문화 예술 방면에서 쓰는 `윤색`이란 단어는 본래의 원작을 다른 각도에서 편집하여 색다른 맛을 내게 하는 용어로 사용되지만 윤색이란 말이 역사학으로 오면 전혀 다른 성격인 조작 또는 왜곡이란 뜻으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유럽에 가면 기독교에 대한 자료와 유물이 대부분이듯이 고려 자체가 불교국가였기에 당연히 사회 전반에 불교적인 소재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오히려 역차별로 불교가 배제되었기에 스님이 다룬 주제들도 불교적인 것이 많은 것이지 창작 윤색이라니 가당치 않는 말이다.

그리고 국사의 지위와 인격을 갖춘 고매한 분이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고 윤색, 왜곡했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을 벗어난 전혀 근거 없는 불확실한 추정에 불과한 것이다.

책을 쓸 때 어떤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쓰는 것과 사실이 아닌 것을 필요에 따라 조작하여 썼다는 윤색과는 천지 차이가 있는 것이라, 말을 잘 가려 써야 할 것이다.

일연스님의 역사 서술에 대한 얼마만큼 객관성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것이 경전을 인용할 때에는 "어떤 경에서 이렇게 말했다"라고 했고 역사서를 인용할 때에는 "어디에서 이르기를"이라며 그 출전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그리고 사람의 말을 인용할 때는 "누가 말하기를, 또는 누구의 말이다"라는 식으로 하였고 자신의 생각을 밝힐 때는 주석을 달아서 명확히 하였다.

당시 세상이 힘들고 어려울 때라서 고통받는 민초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삼국유사에는 그들을 위로할만한 판타지적 성격의 실존했던 이야기를 일부 채록했던 것이지 저자 스스로가 창작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현대에서는 현대의 표현방식이 있듯이 고대에서는 고대의 표현방식이 있는데 고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분적으로 역사 속에 판타지와 신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삼국유사의 설화적 부분과 판타지를 문제 삼아 전체를 부정하는 이도 일부 있지만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 일연스님이란 존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그저 한 권의 역사서를 쓴 종교인을 넘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위대함을 일깨워준 선각자이자 고마운 선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인류학에서 인간에 대한 정의가 여럿이 있었는데 최근은 `이야기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로 그것이 확장되고 있다.

현재 한국인의 정체성은 과거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와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졌으며 그 가운데는 일연 스님이 전해준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 `연오랑세오녀`, `만파식적 이야기`, `원효와 의상의 설화` 등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보면 일연 스님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온 위대한 이야기꾼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의 논문으로 우리 역사가 왜곡되고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는데 오늘도 우리 역사학계는 왜 이리 조용할까

그리고 램지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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