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6:08 (수)
`붉은 깃발법`
`붉은 깃발법`
  • 하태화
  • 승인 2021.02.16 2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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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화 수필가 / 사회복지사
하태화 수필가 / 사회복지사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니 미래 어느 순간 닥쳐올 커다란 신세계의 장벽 혹은, 어렵고 복잡한 전자ㆍ기계 얘기라 여기고 미리 귀를 닫는 이가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우리에게 익숙한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기술, 드론,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이 주도하는 생활환경을 말한다. 우리는 이미 그 속에 들어와 살고 있고 적응해 가는 중이다. 사실 산업혁명이라기보다는 기술 혁신의 과정 속에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지난 2016년 12월, 미국에서 `아마존 고` 무인 매장 1호점이 처음 문을 연 뒤 지금까지 27곳이 오픈했다. 매장에는 계산대나 계산하는 사람이 없다. 고객은 앱을 다운받아 QR코드를 찍어 입장한 다음, 필요한 물건을 들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구입한 물품의 정보는 앱으로 안내되고 등록된 신용카드로 물품비를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계산대가 없다니 참으로 혁명이라 할만하다.

고속도로의 하이패스 차로를 이용하다 보면 이전에 통행 요금을 내기 위해 긴 줄을 섰던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없는 무인 매장, 미래의 어느 시점에 무인 매장에 익숙하다 보면, 과거 물건 값 계산하는데 왜 사람이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요즘에는 무인정산 주차장도 많고 병원의 처방전 발급도 기계가 한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둘 바뀌어 가고 있다.

과학ㆍ기술의 발달에 따라 정책이나 법률이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고 결국은 도태되어 버린다. 18세기 중엽,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영국은 기계공업의 선두주자였다. 당시의 주요 교통수단은 철도와 마차였는데 새로운 교통수단인 자동차가 등장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1865년에 이른바 `붉은 깃발법(Red Flag Act)` 을 제정했다. `붉은 깃발법`의 내용은 이렇다.

△『1865에 제정된 붉은 깃발법.

정식명칭은 The Locomotive Act 1. 교외에서는 6㎞/h, 시가지에서는 3㎞/h로 속도를 제한한다.

2. 자동차에는 운전사, 기관원, 붉은 깃발을 들고 차량의 55m 전방을 걷는 3명으로 운용하고, 붉은 기(낮)나 등(밤)을 든 사람은 보행속도를 지키고, 기수나 말에게 자동차의 접근을 예고한다.』 자동차 앞에 사람이 깃발을 들고 걸어가라니, 자동차가 마차는 물론 사람 걸음보다 빠르면 안 된다는 말이다.

△『1878에 개정된 개정법, Highways and Locomotives Act 18781. 붉은 깃발 필요성은 제거한다.

2. 전방 보행원의 거리를 18m로 단축한다.

3. 말을 만나면 차량은 정지해야 한다.

4. 차량이 말을 놀라게 하는 증기나 연기를 내뿜지 않아야 한다.』

증기자동차에 증기를 내 뿜지 말라고 했으니 자동차 산업을 완전히 봉쇄한 것이다. 그러다 제정한 지 30년이 지난 1896년 이 법이 폐지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이 이미 독일 프랑스 미국으로 넘어간 뒤였기 때문이다. 과학ㆍ기술에서 30년이란 실로 엄청난 세월이다.

지금시점에선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저런 법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냐고 하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당시 증기자동차가 출시되면서 마차업자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제정된 법안으로, 기존의 마차 사업을 보호하고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이다. 기득권 세력의 힘은 이렇다.

붉은 깃발법, 백 년 전 남의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살펴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 줄짜리 법 규정이 신기술 개발을 포기하게 만든다. 우리식 붉은 깃발법을 만들거나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계에게 주고, 사람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마존 고의 무인 매장에 있는 기계를 관리하는 일은 분명 사람이 할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기계가 할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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