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광풍이 또 불었다. 헌정사에 남을 새로운 기록이다. 첫 법관 탄핵을 기념비적인 일로 추켜세워도 손해 보지 않을 것 같다. 국회가 4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소추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 찬성 179표ㆍ반대 102표ㆍ기권 3표ㆍ무효 4표로 가결해 헌법재판소로 넘겼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 판사 탄핵은 정치 보복이나 판사 길들이기라는 맞바람에는 아랑곳 않고 태풍처럼 불어와 국회를 싹 쓸어버렸다. 여당의 무소불위한 힘은 이번에도 거침이 없었다. 앞으로 무슨 기록을 남길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덤덤한 사람에게도 큰 관심을 끌 만하다.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촛불은 여전히 한들거린다. 힘을 잃은 듯하면서 기회가 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이번에 탄핵소추안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민주당 의원 일부는 문자폭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생일 축하 메시지도 아니고 "이번 탄핵에 반대하면 반문(反文)"이라는 압박이었다.
집단 힘의 보편성이 넘쳐나는 사회는 위험하다. 더더욱 사유하지 않고 편을 가르고 선과 악으로 대비시켜 일을 처리하는 사회는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정치적 의견을 달리할 수 있으나 `탄핵에 반대하면 반문`이라는 압박이 버젓이 나도는 상황은 괴기스럽다. 이런 한들거리는 촛불의 힘을 즐기는 측이 있으면, 한들거리는 촛불의 그림자를 보면서 전율을 일으키는 측이 있다. 천박한 사유로 몰아붙이는 사회에서는 희망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다. 왜 우리 사회는 선을 갈라놓으면 일사불란하게 단결해서 거대한 힘을 만드는지 무서울 따름이다.
정치적 해석은 분명히 다를 수 있다. 집단 지성이 무지의 탈을 쓰고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 여유도 없이 한쪽만을 택하게 만드는 정치인들이 휘두르는 권력을 경계해야 한다. 현재 우리 앞에서 나눠놓은 진보와 보수는 권력을 잡기 위한 단순한 수단에 불과하다 해도 틀리지 않다. 국가의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진보와 보수의 두 수레바퀴가 힘의 균형을 맞춰 나아가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는 한쪽 바퀴가 빠져 달아나 버려서 계속 한자리에 돌고 있는 형국이다. 이 현상을 정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또한 문제다.
악의 평범성은 언제라도 유효하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의 눈으로 보면 우리 사회는 정의는 너무 상대적이다.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 하더라도 불빛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 사회는 무지막지하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누구나 그를 향해 돌을 던져야 하지만 그는 우리 옆집 아저씨와 다르지 않았다. 무수한 생명을 불길에 던져 넣는데 `업적`을 쌓은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치를 떨고 그의 얼굴을 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악의 보편성이 우리 속에도 도사리고 있다. 상황이 몰고 가면 제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평범한 일상에서 거대한 악이 생겨날 수 있다. 내가 택한 길은 생명의 길인데 다른 쪽 길은 무조건 멸망이 길이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회는 너무 괴기하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거대한 악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는지 소리를 들어야 한다. 불길은 자기 앞을 비치는 듯하지만 바람의 거꾸로 불면 자신의 눈에 불이 이글거리면서 몸을태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