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도 쉬어간다는 고을 월운
두 아름드리정자나무 지켜보는 마을 입구
열녀비 하나 있다
마을을 지키는 대문처럼
고장의 상징처럼
내 어릴 적 자랑처럼 듣던 얘기
고을 내 어떤 시비도 다 승소케 하셨다는 문장가
양반이 드세어서 그 누구에게도
하대를 했다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 임종 앞에
시집 올 때 소, 돼지, 염소까지 바리바리
몰고 오셨다는 할머니
자기 손가락 은장도로 단지하여
붉은 피 방울방울
깔딱 고개에 들어선 할아버지 입술에 적시니
염라대왕이 보낸 저승사자도 감동하여
차마 모셔가지 못하였다고
할머니 희생적 공적은
열녀비로 가문을 빛내었다고
그 할아버지도 그 할머니도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나는
열녀얘기 들을 적마다
할머니가 요조숙녀 아닌 장군처럼 느껴졌는데
아, 자랑스러웠던 그 열녀비
마을앞 도로가 넓혀져도
사차원장비로 무장한 병원이 생겨도
옛날처럼 버티고 서 있지만
이젠 아무도 자랑하는 이 없고
찾는 이 없는 열녀비, 홀로
가을 낙엽처럼 쓸쓸하다
효는 인륜의 근본이요, 열녀와 효부는 여성 최고의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열녀가 나면 가문은 물론, 그 마을의 자랑이었고 나라에서 하사한 열녀비는 마을 입구에 세웠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개념도 가치도 많이 퇴색된 지금이다. 그러나 위 시속의 얘기는 가슴조이는 순간의 간절함과 애달픈 사랑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우리의 전통 설 명절이 있는 달이어서 우리의 미풍양속들을 새삼 되새겨 볼만한 일이라 올립니다.
시인 약력
- 시인ㆍ시낭송가
- 문학평론가
- 경성대 시창작아카데미 교수
- 교육청연수원 강사
- 전 평화방송목요시 담당
- 한국문협중앙위원
- 시집 `천리향` `애인이 생겼다` 외 다수ㆍ동인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