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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 경남매일
  • 승인 2021.01.3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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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망이 삶을 지배하는 자기피알시대를 맞아 겸손과 겸양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허접한 싸구려 정보로 넘쳐나는 SNS에는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모두가 제 잘났다고 기고만장인 가운데 여야 정치인들의 파렴치한 언행은 국론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겸손이 끼어들 여지는 1도 없어 보인다. 정치풍향계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패거리 민심은 권력심판의 최후 보루라는 선거마저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이처럼 몰염치가 만연된 사회 분위기를 일신할 겸손지도를 주역 지산겸괘에서 찾아보자.

주역 64괘 중 상경15번째 괘가 지산겸(地山謙)이다. 공자 십익의 서괘전(序卦傳)은 지산겸괘의 순서 매김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뜻이 맞는 동지들이 화동해함께 일을 도모하는 상경 13번째 천화동인괘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물자들이 많이 모여 소유한다는 상경 14번째 화천대유괘를 받아, 많이 소유하여 넘치면 사람들이 쉽게 거만해지고 타락하기 때문에 지산겸괘로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주역은 분수에 안 맞거나 차고 넘치면 겸손해지는 중용지도를 지켜야 무탈함을 지산겸괘의 교훈으로 경계하고 있다.

지산겸괘의 초육부터 상구까지 여섯 효의 위격(位格)과 자질을 살펴보자. 하괘 초육은 양위에 음으로 부당위다. 육2는 중정(中正)으로 음위에 음유하고 구3은 양위에 양건으로 정위이며 이 괘의 주효이다. 상괘인 육4효는 음위에 음으로 정위이며, 육5효는 양위에 음으로 부당위지만 중으로 군주의 존위라 복종하지 않는 자는 징벌해야 이롭다고 했다. 상6은 음위에 음으로 정위이다. 상하괘의 호응을 보자. 구3과 상6이 호응하여 육5군주를 위아래에서 돕는다. 그 외는 부당위지만 육5효와 육2효는 중으로 상, 하괘의 중심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초6과 육2효는 협심해 강건한 구3(제후)을 떠받치는 가운데 구3은 다섯 음효의 주효로서 육5의 유순한 군주에게 충직한 제후로서 충성을 다하고 있다. 이는 하괘 간(艮)은 그침이라 상괘를 넘어가 군주를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육4 신하(정경)는 유순하고 관대한 군주(육5)밑에서 군주로서의 위엄을 지닐 수 있게 잘 보필한다.

문왕의 단사(彖辭)를 보자. `겸은 형통하니 군자가 끝마침이 있다.`고 했다. 풀이하면 `겸이 형통하다는 것은 하늘의 도리로 아래를 잘 다스려 밝게 빛나고, 땅의 도리로 낮은 곳에서 위를 향해 나아간다. 하늘의 도리는 가득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고 겸손함을 더해주고, 땅의 도리는 가득찬 것을 바꿔 겸손한 쪽을 흐른다. 사람의 도리는 가득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함을 좋아한다. 겸손은 높이 있으면서 빛나고, 낮은 곳에 있어도 뛰어넘을 수 없으니 이것이 군자의 잘 끝마침이다` 마침이란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이며,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 한다는 뜻이다.

지산겸괘는 모괘(벽괘)인 지뢰복괘와 산지박괘에서 추이한 연괘다. 지뢰복 괘 초9가 겸괘의 구3으로 승하고 박괘의 상9가 겸괘의 구3으로 강하여 추이했다. 그리고 겸괘의 반역(도전괘)이 지산겸괘의 다음 괘(상경16번째 괘)인 뇌지예괘가 된다. 계사전에서 `겸손은 덕의 자루(柄)이고, 그 덕은 존귀하면서 빛난다. 겸손함으로써 예를 지켜 자신의 처지를 감수함이니 이것이 군자의 겸손함이다`고 했다. 겸괘 초6이 동하면 지화명이괘가 된다. 지화명이괘는 뇌산소과괘에서 추이한 괘다. 이를 해석한 효사인 소상전은 `겸겸군자 비이자목야 (謙謙君子 卑以自牧也)`로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는 자신을 낮춤으로써 스스로 수양한다`고 했다.

이처럼 주역 지산겸괘는 지도자와 그 지도자를 보필하는 위아래 사람들과 국민들이 제 분수를 지켜 겸손하고 또 겸손할 때 천하에 덕치가 펼쳐짐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과유불급도 과공비례도 금물이니 중도를 지킴이 정답이다. 아무리 막가는 후안무치의 세상이 됐다고 하지만 인륜지도의 근본은 변함이 없다. 주역 지산겸괘의 겸겸지도(謙謙之道)는 만고불변의 진리이자 현명한 처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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