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7:55 (토)
신고자 보호 조치 약하고 ‘사적 영역’으로 몰아세워
신고자 보호 조치 약하고 ‘사적 영역’으로 몰아세워
  • 어태희 기자
  • 승인 2021.01.26 2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녕 아동학대 사건에 이어 양부모에게 학대당해 사망한 16개월 정인이 사건은 대중을 충격과 비탄에 몰아넣었다. 매년 벌어지는 끔찍한 아동학대의 80%는 가정에서 발생한다. 누군가 알아채고 구조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방치돼 끔찍한 사건으로 귀결된다. 본지는 아동학대를 신고할 의무가 있는 신고의무자, 그 중 아동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경남 교사의 눈을 빌려 아동학대의 실태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아동학대의 끈을 끊을 방법 모색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아동학대, 이제 그만>
① 교사 눈을 통해 본 실태
② 주기적 학대 발생 원인
③ 방지대책과 정책 개선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이 중국에 소개되면서 중국 누리꾼들이 피의자인 양부모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정인아 미안해’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고 나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중국에서 진행 중인 ‘정인아 미안해’ 캠페인에 참여한 중국인 부모들의 모습. 25일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정인아 미안해’(鄭仁對不起)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급증하고 있다./ 대한아동학대 방지협회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이 중국에 소개되면서 중국 누리꾼들이 피의자인 양부모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정인아 미안해’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고 나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중국에서 진행 중인 ‘정인아 미안해’ 캠페인에 참여한 중국인 부모들의 모습. 25일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정인아 미안해’(鄭仁對不起)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급증하고 있다./ 대한아동학대 방지협회

‘가정사’로 치부 신고율 20% 그쳐
‘학대 불감증’ 사회 널리 퍼져있어
경찰 학대 감수성 낮고 대처 미비
학대 발견은 반복 속 드러난 경우
“주변인의 관심이 반복학대 막아”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아동학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학대 불감증’을 얘기한다. 아동학대는 엄연한 범죄이지만 정서상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아동학대’를 ‘사적 영역’으로 여겨왔던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신고율은 낮은 편이다.

박미경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 소장은 “유럽권의 신고율이 80%라면 우리나라는 20%도 안 된다”며 “체벌과 훈육의 개념이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기 때문에 아동학대를 보더라도 ‘가정사’라고 판단해 외면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동인구 1000명 대비 아동학대로 판단된 피해 아동수를 의미하는 2019년 전국 피해아동 발견율(보건복지부)은 지난해 3.81%였다. 경남은 2.39%로 1.74% 최하위인 서울 다음으로 낮았다.

신고의무자인 교사 또한 신고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지가 경남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아동학대 실태’(26일자 12면 ‘교사 47% 징후 알아차리고 10명 중 6명만 신고한다’)에 따르면 신고를 하지 않는 다수의 교사들이 주변의 사례들을 바탕삼아 신고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는 방안을 택했다. 교사가 신고를 망설이는 주된 원인은 경찰에 대한 불신에 있었다.

한 교사는 “분명히 아동학대임을 알지만, 주변의 사례들을 통해 이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리라는 믿음이 없었다”며 “수사기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받을 보복도 두려워 결국 자체적으로 부모와 면담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신고 후 학부모의 보복도 신고를 주저하는 원인이 됐다. 설문에 참여했던 교사 일부는 신분이 노출돼 학부모의 항의가 있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경남교사노조 관계자는 “학교에 직접 찾아와 항의하는 등 보복성 가해가 이어졌다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신고의무자의 신분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신고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인이 사건’ 당시에도 경찰의 대응은 많은 지탄을 받았다. 실제로 아동학대 정황을 포착해 신고했을 때 사건의 검거율은 한없이 낮다. 강기윤 국회의원이 발표한 아동학대 신고 및 검거 건수 현황에 따르면, 2019년 전국적으로 아동학대 112신고가 들어온 건수는 1만 4484건이지만 검거는 4541건이었다. 아동학대를 신고했을 때 제대로 그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는 3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남은 전국 평균보다 검거율이 낮다. 2019년 640건의 신고 중 검거된 사건은 24%인 154건. 검거율은 매년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모자란 수준이다.

강기윤 의원은 “아동학대 사건들이 연속될 때마다 국회는 아동학대법을 개정해왔다”며 “그러나 범죄율 감소는 법의 강화보다 법의 적극적인 시행에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증거를 수집하기 힘든 가정 아동학대의 특징 때문에 입건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경남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아동학대 사건은 대다수가 주변인의 정황 신고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기가 힘들다”며 “다른 범죄와는 달리 증거가 확실치 않은 아동학대는 웬만해선 긴급체포가 불가능하고 무리한 분리는 부모의 항의나 반발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시도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 매뉴얼이나 시스템은 계속해서 구체화되고 있지만 이런 어려움 때문에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면서도 “그러나 무엇보다 현장으로 출동하는 경찰들의 아동학대에 관한 감수성이 확보돼야 더 집요하고 자세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번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 내외부의 시스템이 변화의 길에 섰다. 앞으로 17개 광역 시ㆍ도에 있는 경찰청 18곳에는 ‘여성청소년수사대’가 신설된다. 그동안 시ㆍ도 경찰청은 중요 아동학대 사건만 수사해왔지만 이를 통해 13살 미만 아동 학대 사건 전체를 전담 수사하게 된다.

또한 아동학대 현장조사 때 경찰 등이 출입할 수 있는 범위는 ‘신고된 장소’에서 ‘학대 우려가 있는 지역’으로 확대하고, 조사 거부 때 과태료를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올리는 동시에 업무수행 방해죄도 적용한다.

가해부모의 조사와 아동분리 등 현장조사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악성 민원과 법적 책임도 완화된다. 정부는 대응인력이 민ㆍ형사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법적 근거 마련을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는 이 모든 시스템은 담당 경찰관이 아동학대 감수성을 기반으로 둬야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공혜정 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경남 경찰은 아동학대 감수성과 적극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사례로 경남에 있었던 한 어린이집 학대사건을 들었다. 그는 “부모가 CCTV를 통해 자식이 어린이집에서 엉덩이를 맞는 모습을 보고 신고를 하자 경찰이 ‘이것도 학대면 집에서 훈육하는 것도 학대다. 무고죄로 잡혀갈 수 있다’고 무시를 했었다”고 밝혔다.

아동과 부모의 애착관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 대표는 “정인이 사건의 경우도 출동한 경찰이 정인이가 양부의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보고 ‘애착관계가 형성돼 있다’고 판단했다”며 “아동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부모와 애착관계에 있다. 학대 아동은 ‘매 맞는 아내 증후군’과 똑같은 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애착관계 유무를 떠나 아동이 학대를 당했는지의 사실판단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주변인의 더 많은 관심도 필요하다.

박미경 소장은 ‘우리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역설했다. 그는 “발견한 학대를 단발성으로 여기고 넘어간다면 그것은 큰 실수다. 열 번, 백 번의 학대 중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 그 한 번인 경우가 많다”며 “신고자 보호 조치 시스템을 이용해가며 우리 아이들이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더 개입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