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2:21 (금)
신신곡(新神曲)
신신곡(新神曲)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21.01.21 2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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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단테가 우리 시대에
환생해서 지옥편을
쓴다면 제1층부터
제9층까지의 설계도를
다시 그려야 할지
모를 일이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첫 구절은 웬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 주입식 학교 교육 덕분으로 신곡에 나오는 유명한 몇 구절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옥, 연옥, 천국으로 날라 다니는 영혼의 여행은 흥미진진하지만 유치한 측면이 있다. 신곡을 그 당시 이탈리아의 사회상을 깔고 읽으면 불멸의 고전이 된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관을 묻는 신곡은 팔수록 깊이를 더하면서 지옥편에서 빠지는 깊은 심연에서 나오는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단테가 지옥 입구에서 만나는 문구는 섬뜩하다 `여기로 들어오는 모든 자들은 희망을 버릴지어다.` 세상이 지옥 같다고 표현하는 마음에는 이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꼬리표가 있다. 세상에서 탐욕과 권력욕, 애욕을 좇아 살다 보면 결국 남는 게 지옥 같은 황량한 마음일 것이다. 단테 지옥은 층을 지어 제1층은 림보, 제2층은 음욕 지옥, 제3층은 식탐 지옥, 제4층은 인색과 낭비 지옥, 제5층은 분노 지옥, 제6층은 이단 지옥, 제7층은 폭력 지옥, 제8층은 사기 지옥, 제9층은 배신 지옥으로 내려간다. 지옥 여행을 하다 보면 지옥에 와야 할 사람이 왔다고 수긍이 가지만 특정 층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겐 연민의 정을 느낀다. 단테가 주관적인 생각으로 그 사람들을 지옥 구덩이로 보냈기 때문이다.

단테 지옥에는 그 당시 자신한테 못 보인 사람들은 거의 지옥에서 생고생을 한다. 단테가 우리 시대에 환생해서 지옥편을 쓴다면 제1층부터 제9층까지의 설계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것이다. 순서를 놓고도 고심이 많이 할 게 분명하다. 운이 없어도 지옥에 떨어지는 사태를 보면 지옥 묘사는 시인으로서 상상력에서 나왔다고 본다. 단테가 시공을 넘어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지옥 한 층은 `불공정 지옥`을 만들었을 것이다. 내로남불을 내세워 뻔뻔스러운 얼굴을 밥 먹듯이 그리는 사람들이 불공정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면 신신곡(新神曲)을 읽는 사람들은 통쾌한 얼굴을 지을 수 있다. 웬만한 정치인은 이 불공정의 강에 안 빠질 수 없다. 아마 불공정 지옥은 다른 지옥보다 면적이 수십 배는 넓어야 모든 `손님`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남들이야 어떻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문 대학에 가는 기술을 가진 사람도 이곳에서 고통을 당한다는 판단은 초등생도 할 수 있다.

`당파 지옥`도 인기가 높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프레임 지옥`이다. 자기편이 아닌 사람은 프레임을 씌워 몰락을 재촉시키는 고도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정치계에는 널리고 널렸다. 특히 당을 지어 다른 당을 프레임에 가둬 깎아내리는 책략을 쓰는 사람들은 단체로 당파 지옥에 떨어진다. 이 지옥도 불공정 지옥만큼 면적이 넓고 깊어야 할 것이다. 신신곡 지옥편에서 빠질 수 없는 영역이 제2층 음욕 지옥을 세분화해서 만들어야 하는 `음탕 지옥`이다. 음탕 지옥에는 부인이나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과 놀아나는 사람이 간다. 순전히 여성성이나 남성성에만 이끌려 가정을 돌보지 않고 놀아나면 가는 지옥도 `인기`가 높을 개연성이 크다. 신성한 가정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의 밑바탕에는 음욕이 불타오르지만, 말로는 신사적으로 그럴싸한 변명을 둘러대는 게 역겹다. 제9층 배신 지옥에서는 영원히 차가운 얼음 속에 박혀 고통을 당한다. 음탕 지옥을 예약한 사람들이 그런 상상만으로 정신을 번쩍 차리면 사회 질서가 꽤 바로 세워질 것이다.

단테 신곡에는 정화의 산이 나온다. 정화의 산을 오르면 큰 죄에서 하나씩 해방될 수 있다. 신곡은 이 세상은 완전한 질서가 서 있고 세상에서 작용하는 오묘하고 놀라운 힘은 신에서 왔다고 일러준다. 희망을 버려야 사는 지옥 같은 세상살이라면 이미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신곡 서두에 다가오는 세 마리 짐승을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탐욕을 품은 표범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자, 애욕을 발산하는 암늑대. 인생의 중심에 서서 보면 자신의 주위에 세 마리 짐승만 소리 지른다고 회한에 들 수 있다. 어두운 숲속에서 단테에게 다가온 베르길리우스가 단테 신곡에서 가장 유명한 말을 한다. `사람은 아니지만 한때는 사람이었다.` 시대를 초월해 일러주는 신곡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면 인생의 큰 고비에 짐승에 잡아먹히지 않을 것이다. 올바른 길을 잃고서 어두운 숲에서 헤맬 때 `나는 누구인가`를 일깨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소리에 귀를 닫으면 지옥은 이미 마음속에서 어둠을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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