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9:52 (수)
주역 천택리괘와 순치황제
주역 천택리괘와 순치황제
  • 이광수 소설가
  • 승인 2021.01.17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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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지금까지 주역해석의 기초과정과 주역철학사의 흐름에 대해 개괄적으로 해설한바 있다.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주역 역시 기초가 튼튼해야 기대한 학습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기 서술한 내용을 단초로 더 깊게 천착하는 추수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불문가지다. 주역미생인 필자 역시 가능한 많은 역서를 동시에 섭렵하는 탐독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만의 유명 역학자가 그의 저서에서 "내 강론을 직접 청강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성화 때문에 나의 일상이 방해받고 있다. 내 강론으로 역리해법을 터득하겠다는 것은 큰 오산이다. 나는 수십 년 동안 홀로 서책과 씨름하면서 주역의 진수를 체득하기 위해 각고정려 했다. 내가 지득한 역리해법은 나의 역학저서 속에 다 들어있다. 그 책을 읽고 스스로 깨치려는 노력 없이 역리를 탐하지 말라" 고 일갈했다.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물론 입문과정에서 선험연구자의 지도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내용파악이 되고 나면 문헌탐구에 정진해 주역의 깊고 오묘한 이치를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역 천택리괘를 청나라 순치황제의 고사를 곁들여 설명해 보겠다. 먼저 천택리괘의 괘상을 보면 연못 위에 하늘이 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상괘 건(乾)의 상의(象意)는 하늘, 강건함, 군주, CEO이다. 하괘 태(兌)는 연못호수, 기쁨, 소녀다. 괘의 해석에는 상세한 괘의(卦意)파악과 함께, 공자십익의 다산해석법인 추이, 물상, 효변, 호체의 역리사법과 교역, 반역, 변역의 삼역지의를 모두 적용해봐야 한다. 천택리괘의 단사(彖辭)는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다`이다.

길괘로 보이지만 매사 두려운 마음으로 신중하게 행동해야 형통함을 뜻한다. 이괘의 주효(主爻)는 구5효로 중정(中正)해서 군자의 지위가 돼 상하괘의 주인노릇을 한다. 이 괘가 나오면 내 스스로 나라와 기업과 가정을 책임지고 끌고 나가야 한다. 강건한 주군이지만 횡포한 자가 나타나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호랑이 꼬리를 밟은 이웃의 덜된 신하나 하수들(육3효와 구4효)의 경거망동 때문이다. 천택리괘의 구5효는 쾌리정려로 즐겁게 실천해 나가지만 아무리 바르게 다스린다 해도 위험이 뒤따르니 염려하고 또 조심해야한다는 뜻이다.

청나라 순치(順治)황제는 황제의 자리에 환멸을 느껴 어느 날 홀연히 곤룡포를 벗어 던지고 황궁을 떠났다. 순치는 청나라 3대 황제로 4대 강희제의 부(父)이다. 그는 수많은 정복전쟁에서 만주와 중원까지 통일한 전쟁영웅이었다. 그러나 재위18년 되는 해 문득 세속을 등지고 산서성 오대산으로 입산 정진해 불가에 입적했다. 그는 철학적이고 심오한 시 한 수를 남겼는데 불가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자손은 제 스스로 살아갈 복을 지니고 사나니/후손을 위한다고 소와 말 노릇하지 마소/고래로 역사 속에 수많은 영웅들이/동서남북 사방으로 한 줌 흙 되어 갔소/올 적에는 기뻐하고 갈 적에는 슬퍼하니/덧없는 인간세상 나그네 신세일 뿐/오지나 않았으면 갈 일도 없을 텐데/기쁜 일 없으면 슬픈 일 있을쏜가/곳곳이 수행 처요 쌓인 것이 밥이거늘/어디 간들 밥 세 그릇 걱정하랴/황금백옥 귀하게 여기지 마소/가사 얻어 입기가 무엇보다 더 어렵나니/내 비록 천하대지의 주인이련만/나라와 백성걱정 더하니/백 년 삼만 육천 날이 절집살이 한나절만 못 하다오/부질없는 한순간의 잘못으로/붉은 가사 벗고 누런 곤룡포 입었으니/내 본디 서축의 스님인데 /어찌하여 제왕의 길로 들어섰더냐`(장영동, 생생주역) 모든 것이 전전하여 제행무상이라 길흉화복을 예측할 수 없거늘 황제의 존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생사 위를 처다 보면 내가 한없이 작아 보이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보다 못한 삶이 수없이 많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줄이면 폼생폼사 초로인생 오십보백보다. 천택리괘 구 4효 `살아온 과거의 이력을 돌이켜보고 미래의 길흉조짐을 살펴본다.`는 시리고상(視履考祥)의 효사처럼, 천심대로 살아왔다면 그 여생도 크게 흉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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